12월 미국 뉴욕 도심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화려해진다. 록펠러센터 앞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을 밝히고, 백화점은 크리스마스 테마로 디스플레이를 바꾼다. 센트럴파크, 브라이언파크, 유니언스퀘어 등의 명소에선 지역 상인들이 물건을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선다. 혹독한 겨울이 오기 전에 소외된 이들과 이웃들을 보듬고 사랑을 나누는 게 미국의 ‘크리스마스 스피릿(정신)’이다.
스크루지 영감과 산타클로스는 크리스마스 정신을 상징하는 대표 캐릭터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속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은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제 것만 챙기며 직원, 이웃을 박대하다가 ‘크리스마스 스피릿(유령)’의 방문을 받고 개과천선한다. 이와 반대로 빨간 코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는 산타는 크리스마스 정신을 보여주는 사랑과 나눔의 아이콘이다.
올해 미 CNBC방송은 산타를 소재로 한 흥미로운 분석을 소개했다. 산타가 실제로 있다면 세계 최대 부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보다 돈이 많아야 한다는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24억 명으로 추정되는 전 세계 17세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10달러짜리 인형을 선물하려면 제작비 26조5000억 원, 선박 등을 이용한 배송비 7460억 원, 요정 5만 명의 인건비 등을 더해 매년 27조6000억 원을 써야 한다는 거다. 97조 원을 가진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가 산타 역할을 대신해도 4년이면 재산을 탕진하는 셈이다.
‘산타 비즈니스’는 실제 경영대학원 수업시간에 등장하는 사례 분석 소재다. 산타가 경영자라면 이 ‘착한 사업모델’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선물 비용을 댈 자선사업가가 없으면 스크루지 영감 같은 구두쇠들에게 강제로라도 뜯어내야 할지 모른다. 24억 명의 아이들 중 누가 착한 아이인지 찾아내고 하룻밤에 원하는 선물을 보내주는 ‘택배 전쟁’을 매년 치러야 한다. 선물 포장과 배송을 위해 요정을 채용하려고 해도 산타 체면에 비정규직을 뽑을 수도 없다. 선물이 맘에 들지 않으면 반품과 소비자 불만도 엄청날 것이다. 자칫 산타 비즈니스가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똑똑한 산타 사장님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잘 아는 대로 부모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셀프서비스로 해결했다. 부모들이 선물을 골라 아이 머리맡에까지 놔주니 산타가 하룻밤에 배송을 마치기 위해 썰매를 과속할 필요도 없고, 위험을 무릅쓰고 굴뚝을 탈 필요도 없다. 천문학적인 요정 인건비를 지출할 필요도 없다. 산타가 할 일은 ‘크리스마스 스피릿’을 널리 알려 전 세계 부모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도록 바람을 잡는 것뿐이다. 착한 일을 하면 선물을 받는다는 공정성의 룰과 보상에 대한 믿음이 깨지지 않도록 규칙을 세워 실천하고 널리 알리는 일이다. 산타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는 아이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크리스마스마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나라 경제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일자리와 소득이라는 선물을 배달해주겠다는 의욕만 앞세우다간 ‘착한 일을 하다가 망하는’ 산타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세금을 풀어서 ‘선물’을 사고, 공무원을 늘려 직접 배달까지 하려고 덤비다간 ‘빌 게이츠 산타’조차 버티지 못한다. 내년엔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과 시장을 파트너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똑똑한 산타 사장님처럼. 평생 제 몫만 챙기고 이웃에게 인색할 것만 같던 스크루지도 결국엔 ‘크리스마스 스피릿’을 실천하는 동반자가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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