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에 낸 저서의 에필로그를 다시 읽으면서 미래 예측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5년 뒤에도 김정은 체제가 존속한다면’이라는 제목으로 그해 12월 선거에서 당선될 남한 새 대통령의 후임이 결정되는 이달(실제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5월로 당겨짐)까지의 북한을 전망했다. 북한학 지식에 기자의 상상력을 가미하는 ‘학문-저널리즘적 추측(acadenalistic guessing)’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 기교를 부려 봤지만 맞은 예측보다 틀린 억측이 더 많은 것 같다.
“장성택이 조카(김정은)에 의해 철직을 당한다면, 정책 실패가 아니라 인사 실패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 대목은 얼추 맞았다. “이전과 다른 획기적인 변화는 어렵다”거나 “이명박 정부 이후 시작된 남한과의 거리 두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본 것도 마찬가지다.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면서 핵개발을 놓고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는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은 반만 맞았다. 아버지 김정일처럼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를 오락가락할 것이란 전망은 틀렸다. 일관되게 시장 메커니즘의 확대를 유지하고 있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북한의 미래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늘 북한을 예측하려는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과정에 미처 알지 못했던 북한의 어떤 부분을 파악할 수 있고, 대응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2018년 새해를 앞둔 보통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북한의 미래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것인가’와 ‘김정은이 두 손 들고 대화로 나올 것인가’.
1년 뒤 또 후회할 각오를 하고 전망을 해보자. 우선 지난해 1월 6일 4차 핵실험으로 시작된 2년간의 북한발 전략 도발 국면은 내년 어느 시점에 끝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스스로 ‘핵 무력 완성을 이뤘다’고 주장하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책으로 치면 한 장(章)이 끝난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 장이 어떻게 끝나고 어떤 장이 어떻게 시작될지가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인적 경제적 피해를 각오하고 무력행사에 나서기는 어렵다고 본다. 올해 1월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최고의 압박과 개입’ 정책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다자 제재와 미국 제재 △중국 압박하기 △한미일 공조체제 강화 △무력시위 등 10가지 정책수단으로 이뤄진 대북제재 레짐(regime)의 틀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형성된 것 그대로다. 다만 오바마와 달리 무력 사용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말로 위협하면서 10가지 정책수단을 조금씩 진전시켜 온 것이 트럼프 대북정책의 실체다.
미국이 무력 사용을 할 수 없다고 김정은이 핵·미사일을 완성시켜 들고 무한정 버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통산 10번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인 2397호는 역대급 무관심 속에 22일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하지만 이번 결의로 북한의 유류 반입량은 원유와 정제유를 합해서 이전(950만 배럴)의 절반 이하(450만 배럴)로 떨어졌다. 당과 군 등 권력기관의 달러 수입원은 이제 거의 막혔다.
1990년대 초 소련이 미국에 맞먹는 핵·미사일을 들고도 망한 것은 소비에트 제국을 유지하는 데 너무나 많은 달러를 낭비했기 때문이다. 그 여파에 따른 북한의 ‘고난의 행군’ 경제난은 소련발 무상 및 우호가격 원유공급 중단이 촉발했다. 핵·미사일을 실전배치한다고 원유와 달러가 굴러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그래서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