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삐 살아가는 것인지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인지, 평소에는 시간의 소중함을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 연말이 돼 한 해를 되돌아보면 많은 후회 속에 조금의 시간이 더 있다면 부족한 부분을 채워 못다 이룬 성취를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간이야 값으로 매길 수 없고, 설령 값을 매긴다 하더라도 어느 시간이 더 헐하고 어느 시간이 더 값어치가 있겠는가마는 한 해가 저무는 때의 한순간은 더없이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한 해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마저 기울어가던 1904년의 섣달 그믐날을 살았던 황현은 그 순간을 만금의 값어치는 될 것이라고 하였다.
묵은 한 해를 보낸다는 것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것을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설렘 중 어느 것이 크냐에 따라 자신의 나이나 처지, 그리고 어떻게 한 해를 살았는가를 가늠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민구(李敏求)는 객지에서 벼슬 생활을 하며 맞이한 섣달그믐에 “아이들은 다투듯 새해의 즐거움을 쫓는데, 나그네는 공연히 옛날의 즐거움만 떠올리네(兒童競逐新年樂 客子空懷舊日懽)”라고 하였고, 송상기(宋相琦)는 노년에 맞이한 섣달그믐에 “젊어서는 세상을 즐길 줄만 알았는데, 늙어 부질없이 지난 세월 애석해하네(少日只知娛節物 老來空復惜年華)”라고 하였다.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항상 연말처럼 하며 한 해를 살아간다면 정작 연말에는 한 해를 잘 살았노라고 자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살펴 본 선현들이 맞이했던 섣달그믐은 음력을 기준으로 하니,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양력의 연말과 비교해 볼 때에는 아직 한 달 이상의 시간이 남아 있다. 연말뿐 아니라 매 순간이 만금의 값어치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서 지금 떠오르는 후회와 반성의 생각들을 조금 더 길게 가져간다면 한 달여 후에는 똑같은 후회와 반성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황현(黃玹·1855∼1910)의 본관은 장수(長水), 호는 매천(梅泉)이다. 초기에는 과거 공부를 하였으나 부패한 세상에서의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 전념했다. 1910년 일제에 나라가 강제로 병합되자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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