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무렵 사무실이 있는 서울 광화문으로 출근하다 보면 익숙한 풍경이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이는 광장 앞 교차로에 서면 찬 바람은 더 거세진다. 대형 전광판의 광고 화면과 짧은 뉴스를 보고 있자면 “힘내라” “Have a nice day” 등 노방전도에 나선 누군가의 말이 어김없이 귓전을 때린다. 11월부터는 사랑의 온도탑이 등장했다. 마지막에 본 숫자는 65.2도였다. 연말 온도로는 최근 3년 사이 최저 수준이고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랑은 어디에 있나? 며칠 전 우연히 본 영화 ‘러브 액추얼리’의 주장은 작품 속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러브 액추얼리 이즈 올 어라운드(love actually is all around)’이다. 사랑은 사실 어디에나 있다 정도로 풀이될 것이다.
2003년 개봉 당시 젊은 총리(휴 그랜트)의 사무실과 계단을 오가는, 예상을 깬 현란한 허리춤과 절친의 아내를 사랑하는 한 남성이 전하는 무언의 ‘손 팻말’ 고백이 화제가 됐다. 14년 만에 보는 추억의 영화는 새삼 또렷하게 마음에 들어왔다. “…고백할래요. 크리스마스잖아요. 내 희망사항을. 내게 당신은 완벽해요. 가슴 아파도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영화는 사랑과 결혼, 죽음과 이별 등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인생의 의문 부호와 함께 다양한 커플을 등장시켜 삶이란 그림의 모자이크를 보여준다. 그 조각들을 단단하고 설득력 있게 붙여주는 접착제는 바로 사랑이다.
많은 팬들은 이 커플들의 ‘스토리 그 후’를 기다렸다. 결국 이 얘기는 단편으로 만들어져 5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자선기금을 모금하는 날인 ‘레드 노즈 데이(Red Nose Day)’ 특집으로 공개됐다.
연말이면 댕그랑댕그랑 종소리와 함께 거리에 서는 빨간 구세군 자선냄비에 역대 최고 금액인 1억5000만 원 상당의 수표가 최근 모금됐다. 27일 자선냄비 모금액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5000만 원짜리 수표 3장이 발견됐다. 이 수표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백화점 앞에 있는 자선냄비에 24일 누군가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3장이 함께 접혀 있고 일련번호도 이어져 한 사람이 기부한 것이 확실한데 누가 기부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게 구세군의 설명이다.
구세군 홍보팀에 따르면 12월 1일부터 25일까지 46억 원이 모금돼 지난해 45억 원을 넘어섰다. 거리모금은 10% 정도 줄어들고, 기업 모금은 30% 늘었다. 홍보부장인 임효민 사관은 “현금보다 카드 사용 비중이 높은 라이프스타일 변화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의 영향으로 ‘거리 인심’이 나빠진 것 같다. 웃으면서 ‘잘 쓰이는 게 맞느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늘어 씁쓸하다”라고 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격동의 2017년이었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와 촛불집회, 정권교체에 이어 최근 제천 참사까지 숨 막히는 한 해였다. 한국고전번역원이 선정한 올해의 한자는 2017년 ‘맑을 정(淨)’이었지만 내년에는 조화와 평화를 의미하는 ‘화할 화(和)’다. 희망이 담긴 글자다.
영화는 크리스마스니까 더 솔직하고 용감해지고 사랑하라고 외친다. “찾아보면, 사랑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고. 크리스마스를 새해로 바꾸면 어떨까. 마음에 둔 여직원을 찾아 나섰다 헛다리 짚은 총리와 한 여성의 대화다. “내털리는 옆집인데요. 혹시 그분(총리) 아니세요?” “정치 못해서 미안해요. 내각 탓이죠. 내년엔 나아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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