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희는 제천 동명초등학교 3학년 강나연, 5학년 김문주입니다. 얼마 전 기부 포비아라고 적힌 기사를 봤습니다. 지금은 기부포비아가 아니라 기부폭염이 와야 합니다. 기부폭염이 오려면 시작을 해야 되니 하나하나 사랑과 관심을 선물해 드리며….” 26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삐뚤빼뚤한 글씨의 손 편지가 도착했다. 충북 제천의 초등생 2명이 과학전람회에서 수상해 받은 장학금 40만 원과 함께 보내온 것. 어린이들은 “기부금이 슬프거나 불편한 이웃에게 희망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기부포비아와 운율을 맞춘 기부폭염이라는 단어가 의젓하다.
▷올해 말 기부폭염은커녕 기부한파가 모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은 29일까지 65.2도에 머물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기부금 목표액 1%가 모일 때마다 1도씩 올라간다. 올해 목표는 3994억 원이다. 작년과 재작년 이맘때 70도 가까이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저조한 실적이다.
▷진화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협동은 유전자가 자신의 복사본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한 전략’이라며 유전자적 관점에서 보면 이타심은 결국 이기심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에드워드 윌슨이나 데이비드 윌슨 같은 학자들은 ‘집단은 단체의 이득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과정을 통해 진화한다’는 집단 선택론을 옹호한다. 이타심이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남에게 도움을 주면 내가 도움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도 있다. 해석은 구구하지만, 이런 이론들로 ‘슬프거나 불편한 이웃’을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기부한파는 대개 불황과 함께 찾아오지만 지난달 소매판매가 전달보다 5.6% 늘어난 것을 보면 지표상 소비심리는 괜찮다. 그보다는 불신이 원인인 듯하다. 희귀병을 앓는 딸에게 준 기부금으로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닌 ‘어금니 아빠’ 사건 등이 기부포비아를 키웠다. 지난해 최순실 국정 농단 여파로 기부 규정을 강화한 기업들도 올해는 소극적이다. 남은 겨울이 길다. 어린이들의 삐뚤빼뚤 편지가 기부폭염의 도화선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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