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은 그렇게 기뻐할 조건이 아니었다. 열 살도 되기 전에 부모를 열병으로 잃었다. 보육원에서 일꾼이 필요한 가정집에 양녀로 가기 위해 기차역에서 기다렸다. 매슈 아저씨는 스펜서 부인에게 사내아이를 부탁해두었던 터였다. 얼굴 한가득 주근깨에다 새빨간 머리의 못생긴 앤을 보고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착오가 있었던 거야. 보육원으로 돌려보내야겠지?’ 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여자아이가 먼저 명랑하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매슈 커스버트 아저씨죠?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가워요. 아저씨가 데리러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하지만 만약 오늘 밤에 오시지 않아도 저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아저씨가 오지 않으면 기찻길을 내려가 저기 모퉁이에 있는 커다란 벚나무 위에서 있을 생각이었어요. 하얀 벚꽃이 활짝 핀 나무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자는 건 멋진 일이잖아요. 안 그래요?”
앤은 인생에서 지독히 쓸쓸한 한순간에도 낙관을 놓친 적이 없다. 하지만 이 무슨 대책 없는 낙관일까. 세상이란, 인간이란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둘러싼 이 모든 것이, 이 순간이 귀하고 소중하다는 달관인가. 그것은 어떤 연민의 형식일까? 어떤 활기의 방식일까?
어쩌다 연말이다. 아니 어김없이 연말이다. 올 한 해도 슬픔과 분노는 퇴적층처럼 단단하기만 하다.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작년부터 극심한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학교본부는 교육부에다 대고 속으로 삿대질만 해댔고, 교수들은 학교본부에 속으로 삿대질을 해댔다. 국어국문학과가 대학에서 없어지는 것은 어머니를 버리는 것과 같다고 국문학과 교수가 핏대를 올렸지만 좌중은 침묵했다. 교수들은 학교본부를 비난했지만 궁극에는 자기들의 학과가 없어지지 않기 위해 희생양이 생긴 것을 속으로 다행스러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권력은 사악했다. 궁극적으로 모두 인간은 약한 것이다. 인간은 악한 것이 아니다. 약하기 때문에 악한 것이다.
국문학과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울었다. 내 눈물을 닦기도 전에 학생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했다. 황량하고 넓은 벌판에 홀로 촛불 하나 들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세상은 화폐경제 논리로 거대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강자와 권력 가진 자들이 주장하는 원칙만 있을 뿐이었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구조조정 중이다. 경기는 더욱 나빠진다고 하는데 국민총생산(GNP)은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이 기우뚱하고 이상한 수치의 논리를 난 잘 모르겠다. 나는 메는 목을 애써 참으며 학생들에게 힘껏 말한다. 새해엔 다시 낙관의 힘을 믿어보려고. “얘들아, 그래도 우리에겐 내일이라는, 아직 아무 실패도 하지 않은 새날이 있지 않니? 그렇게 생각하면 기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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