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지 않은 건데 그걸 먹으면(非義而食)/도적놈에 가깝고(則近盜賊)/일하지 아니하고 배를 불리면(不事而飽)/벌레가 아닐쏘냐(是爲螟䘌)/밥을 먹을 적마다 꼭 경계하라(每飯必戒)/부끄러움 없도록(無有愧色) -밥그릇(飯盂)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1651∼1708) 선생께서 돌아가신 아버지 무덤에 넣을 지석(誌石)을 굽기 위해 광주(廣州)에 있는 도요(陶窯)에 갔습니다. 작업을 진행하는 틈틈이 도공(陶工)에게 명하여 몇 가지 그릇을 빚게 하고 그릇마다 명문(銘文)을 지어 옛사람이 기물을 통해 자신을 경계하던 뜻을 부쳤습니다. ‘농암집’ 제26권에 실린 ‘잡기명(雜器銘)’의 첫 번째가 바로 위의 밥그릇에 부친 글입니다. 불의한 것을 먹는 자는 도적이요 일도 안 하고 배불리 먹는 자는 버러지. 예나 지금이나 그러한 자들이 많은 세상에 이런 외침은 서늘하면서도 통쾌합니다. 밥 먹을 때마다 이 구절을 상기한다면 괜찮은 사람 되는 건 일도 아닐 것입니다. 선생은 이런 식으로 술항아리, 세숫대야, 등잔, 필통, 연적(硯滴)에 대해 각각 명(銘)을 쓰셨습니다. 다음은 각각 무엇에 대해 쓴 것일지 한번 짐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굴을 하루라도 아니 씻는 이 있으랴(面有一日而不T者乎)/허나 그 마음속이 종신토록 더럽다면(至於心而終身垢穢)/작은 건 살피면서 큰 것은 내버리며(小察而大遺)/내면은 경시하고 외면을 중시함이니(輕內而重外)/어허,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게 아니겠나(嗚呼, 多見其蔽也)
기름이 농도 짙어 불빛 환히 빛남은(膏沃而燁)/내면의 덕 겉으로 드러난 것이겠고(德之章也)/불이 활활 타다가 기름 말라 꺼짐은(火熾而涸)/내면의 그 욕심이 해쳐서가 아닐까(慾之戕也)/거울삼을 하나와 경계 삼을 한 가지(一鑑一戒)/이들 모두 잊어서는 안 되고말고(皆不可以忘)
짐작하셨는지요? 첫 번째는 세숫대야, 두 번째는 등잔입니다. 등잔이 환히 빛나는 것은 내면의 덕이 드러나는 것이요, 기름이 다 타서 꺼지는 것은 욕심 때문에 덕이 고갈된 것이라는 비유에 마음이 뜨끔합니다. 그렇지만 아침저녁으로 세수를 할 때마다 ‘얼굴보다는 마음을 씻으리라’ 하고 생각한다면 어느새 사람답게 사는 길로 나아가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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