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 해 동안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1만3092명이다. 40분 9초마다 1명씩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는 인구 10만 명당 평균 자살사망률 25.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의 12.0명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경찰이 구조한 자살 시도자도 2010년 1689명에서 2012년 2665명으로 급증했고, 그 이후에도 매년 수백 명씩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자살예방 활동에서 경찰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지만 체계적인 교육이나 적절한 자살 위기 대응 방안은 체계화되지 못했다. 경찰서, 소방서, 군부대 등에서 개별적으로 자살예방교육이 간간이 시행되고는 있다. 하지만 자살 징후를 미리 파악하고 상담프로그램을 연계하는 초보적인 형태의 일반적 자살예방 프로그램일 뿐 위급한 자살 상황에서 적용 가능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위급한 자살 상황에 대비하는 전문 대응프로그램은 그 필요성에 대한 인식조차 미비한 실정이다.
자살 관련 국가 긴급구조체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경찰 인력 중 58.8%에 해당하는 최일선 현장 경찰관들은 물론이고 119구급대원을 비롯해 자살 상황에 노출될 빈도가 높은 현장 종사자들이 위급한 자살 상황 대응전략을 갖지 못한 채 개인의 역량에 의존해 일하고 있다. 경찰관이나 소방관들이 자살 시도자를 구조하려다 안타깝게 순직하는 일마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대구 수성구에서 자살 시도자를 구조하려던 경찰관이 9층에서 추락해 순직하기도 했다.
경찰, 소방 등에서 출동하는 자살 상황은 고층 빌딩 및 다리 위에서 투신하기 직전이나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焚身)자살을 시도하기 직전, 가스배관을 끊고 라이터를 들고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 등 일촉즉발의 위험 요소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장에는 자살 시도자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이 분노하기 때문에 여러 위험이 존재한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자살예방사업이 가정하는 일반적인 예방적 자살 개입 상황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지금까지는 자살 시도자를 구조하기 위해 경찰, 소방 등이 ‘얼마나 빨리 출동하는가’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수많은 변수와 위험 요소가 공존하는 위급한 자살 상황에서의 대응은 속도의 문제뿐만 아니라 ‘얼마나 잘 훈련받았고 적절한 대처 능력을 갖추었는가’의 문제다. 즉, 자살 시도자의 심리적 생리적인 변화와 특성, 분노 감정의 적절한 배출, 절제된 대화 패턴, 안전조치 등에 대한 이해와 자살 시도자를 구조하기 위한 적절하고 전문적인 위기 개입 대응전략과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의 국가긴급구조체계에서 위급한 자살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정비하고 경찰, 소방 등 긴급구조체계 종사자들에게 전문화된 교육을 보급하여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것만이 자살 위기 상황에서 업무 중 순직한 경찰관의 희생에 대한 살아남은 자들의 진정한 의미의 ‘애도(哀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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