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서혜림]한복 세배, 농촌서도 옛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서혜림
시골에서 세 번째 새해 아침을 맞이했다. 페이스북 추억보기에서 귀촌 첫 새해 사진들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돌아보니 그때와 지금은 같은 곳에 살고 있는데, 너무나 다른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귀촌 초기에는 삶의 패턴이 바뀐 직후라서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단골 술집과도 멀어졌고, 직장과 사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꾸려가다 보니 인생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은 효과가 있었다. 스트레스와 감정의 응어리들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삶을 곱씹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움은 익숙함이 되고, 삶은 어느새 다시 재생 버튼이 눌린 채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마냥 고요하고 평화로울 것만 같았던 시골 생활에서도 나름의 고충이나 스트레스가 쌓여 갔다.

시골에 살기로 결정하며 내심 기대했던 시골 풍경이 있었다. 하지만 살면 살수록 시골은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수박을 서리하면 절도가 되고, 가사는 남녀가 반반 나누어서 한다. 예전처럼 집성촌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설날 풍경도 예상과는 달랐다. 커다란 가마솥에 떡국을 끓이고, 아이들이 바글거리며 세배를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귀촌 첫해, 새해를 맞이해 남편과 생활한복을 맞췄다. 왠지 시골에서는 모두가 한복을 입을 것 같았고, 한복은 어딘가 시골과 잘 어울리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해 우리의 한복은 온 마을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부부가 한복을 입고 세배하는 건 시골에서도 드문 풍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환상이 깨진 만큼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도 찾을 수 있다. 우리 마을의 설날에는 귀촌자들이 모여 마을 식당에서 함께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마을 선생님 격인 어르신들을 방문해 세배한다. 오히려 시골에서 기대할 것은 과거의 정취보다는 삶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삶을 더 넓게 조망해 보는 기회가 아닐까 한다. 환상은 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하기는 이르다. 기대했던 바와는 많이 다르지만, 기대하지 못했던 것들에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지만, 그래서 하루하루가 새롭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귀촌 3년 차인 지금,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시골 생활도 나름대로 바쁘고 정신없을 때가 많다. 귀촌은 확실히 일시정지와 같은 효과를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 전체가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귀촌을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도 아니다. 시골에 살며 새로운 꿈이 생겼다. 새집을 짓는 일이다. 도시의 관점에서 보면 한없이 소소하겠으나, 시골에는 시골 나름의 역동성이 있다. 불안한 시대에 인생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는 것은 모두에게 권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유 없이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 든다면 귀촌이 아니더라도 잠시 멈추어 서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찬찬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서혜림

※필자는 인천에서 생활하다가 2015년 충남 홍성으로 귀촌하여 청년들의 미디어협동조합 로컬스토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골 살이#귀촌#삶의 패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