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인사 소외된 외교부… 인사에만 목맨 業報인가
5년 절치부심 윤병세 컴백… ‘외교관 정치화’ 代價 외교 실패
‘외교부 건너뛰기’ 강경화 장관… 결기 보이거나 거취 고민해야
20여 년 전 현 외교부의 전신인 외무부 출입기자였던 나는 인사철이 다가오자 이상한 장면들을 목도하게 됐다. 통상 인사운동이란 것은 물밑에서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외교관들은 아예 드러내 놓고 인사 청탁을 했다. 국내외의 같은 라인 선후배들끼리 똘똘 뭉쳐 끌어주고 밀어줬다. 심지어 기자들에게도 인사 청탁이 들어왔다. 공개적인 인사운동이 용인되는 분위기는 외무부의 특수 사정 때문이란다. 인사명령에 따라 가족들도 미국부터 아프리카 오지까지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인사에 목을 매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그 업보(業報) 때문일까. 최근 외교부 대사 인사를 보면 인사운동이고 뭐고 필요 없는 조직이 돼버렸다는 느낌이다. 4강 대사에도 무자격 인사들이 내리꽂히더니, 이번에는 영어나 주재국 언어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이 대사 자리를 꿰찼다. 주요국 대사가 아니라면 꼭 외교관일 필요는 없다. 미국만 봐도 그렇다. 그래도 이건 도가 넘었다. 잘나가던 사람들이 아무 보직도 못 받고, 혹은 옷까지 벗게 되면서 외교관들 사이에선 살아남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자조가 번지고 있다. 졸지에 물먹은 인사들은 어떤 인물을 떠올렸을 법하다.
윤병세. 서울대 법대 출신에 23세에 외무고시 패스. 북미1과장과 주미(駐美) 공사를 거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장과 대통령통일외교안보수석비서관까지. 근면과 명석함으로 정권에 관계없이 잘나갔던 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하루아침에 옷을 벗었다. 오지의 대사 자리 하나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5년의 절치부심. 박근혜 캠프에 몸담은 그는 장관으로 권토중래(捲土重來)했다.
윤병세의 드라마틱한 컴백은 그만큼 외교부의 정치화를 가속화시켰다. 지난 대선 때 수십 명의 전·현직 외교관들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 줄을 섰다. 반 전 총장이 중도하차하자 황망해하면서도 곧바로 문재인 캠프를 비롯한 각 진영의 문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외교관이 정치화하면 그 대가는 결국 한국 외교가 치러야 한다.
박근혜 청와대는 취임 후 미국보다 중국을 먼저 방문하는 것을 검토했을 정도로 중국에 꽂혔다. 임기 전반 박근혜 정부의 중국 경사(傾斜)는 당연히 미국의 반발을 불렀다. 이런 친중(親中) 행보가 우리의 안보 국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사실을 미국통인 윤 장관이 몰랐을 리도 없다. 이어진 한일 위안부 졸속 합의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널뛰기…. 연달아 청와대 주도의 외교 실책들이 나왔지만 윤 장관은 외교부 수장이 당연히 해야 할 견제와 균형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것이 5년의 와신상담 끝에 박 전 대통령에게 발탁된 윤 장관의 태생적 한계라면 한계였다.
똑같은 일이 강경화의 외교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강 장관은 외교관 직역 이기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발탁된 신데렐라다. 이 태생적 한계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문재인 청와대의 ‘외교부 건너뛰기’는 박근혜 정부 때보다 더 심해졌지만 할 말을 못 한다. 문제는 청와대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국가안보실장과 차장들도 북핵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 이들과 강 장관은 모두 동북아 외교 현장에서 10년 이상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교부의 카운터파트인 미국 국무부도 렉스 틸러슨 장관의 약한 입지 때문에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외교부-국무부 라인이 사실상 마비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외교부가 안팎으로 휘청거리니까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의 말이 결국은 외교정책이 된다는 구설이 나오는 것 아닌가.
강 장관이 발탁됐을 때 속으로 응원했다. 국회에서 외교통상부로 옮길 때 2계급 강등을 감수하면서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삶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외교부 이기주의를 타파하고 실력으로 승부하길 바랐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다.
리더십이 흔들리는 조직, 인사운동을 위해 바깥을 두리번거리는 조직의 사기는 바닥일 수밖에 없다. 인간 승리의 드라마는 충분히 보여준 강 장관. 취임 반년이 지난 만큼 이제는 실력과 결기를 보일 때다. 그것도 안 되면 거취를 고민해야 한다. 외교부가 이리저리 휘둘릴 만큼 우리가 처한 외교안보 상황이 한가하지 않다. 이도저도 아니면서 자리보전에만 급급한다면 대한민국 외교부에 조종(弔鐘)을 울린 장관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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