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天子의 나라’ 대한제국의 天文 명당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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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시절의 환구단 제단(오른쪽 원형지붕)과 황궁우(가운데 3층 팔각지붕).
대한제국 시절의 환구단 제단(오른쪽 원형지붕)과 황궁우(가운데 3층 팔각지붕).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서울에서 조선왕실의 마지막 ‘양택(집) 풍수’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 딱 두 군데 있다. 정동의 덕수궁과 소공동의 환구단 터다. 덕수궁은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한 고종(조선 26대 왕)이 전각들을 새로 지어 법궁(法宮)으로 사용했던 궁궐이다. 또 덕수궁에서 동쪽으로 400여 m 거리의 환구단은 그해 10월 12일 황제로 등극한 고종이 천자(天子)의 자격으로 제천의식을 치른 제단이다. 이 두 곳은 100여 년 전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공간이자 대한제국의 풍수 실력을 감상할 수 있는 명당 터다.

먼저 덕수궁은 조선의 여러 궁궐과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경복궁을 비롯해 창덕궁, 창경궁 등은 모두 산 바로 아래에 조성돼 있다. 경복궁은 북악산 자락을 의지하고 있고, 창덕궁과 창경궁은 매봉 산자락에 기대어 있다. 반면에 덕수궁은 인왕산 줄기에서 내려온 야트막한 둔덕이 배경으로 있을 뿐, 의지할 만한 산이 보이지 않는다. 평지 위에 돌출적으로 세워진 조선 유일의 궁궐이다. 뒷산, 즉 주산(主山)이 없기 때문에 대한제국의 수명이 오래가지 못했다는 ‘오해’까지 받고 있다.


사실 덕수궁은 사신사(四神砂·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곧 전후좌우의 지형과 지세를 살피는 중국풍수론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반면 땅의 형세 대신 하늘 기운이 직접 하강하는 천기하림(天氣下臨)의 우리식 터잡기 이론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중국 지안(集安)의 광개토태왕릉과 장군분(총) 등 고구려 왕릉들은 거의 대부분 천기하림의 터에 조성돼 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공중의 천기 에너지를 보다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땅 밑이 아닌 지상의 높은 위치에 무덤방까지 조성해놓았다. 이는 고구려 고유의 천문풍수(天文風水) 관념이자 중국 동북지역을 무대로 한 ‘북방풍수’의 전통이기도 하다.

덕수궁에서는 이런 천문풍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정전인 중화전과 석어당의 경우 정확히 천기하림의 터에 들어서 있다. 민감한 체질은 하늘기운이 하강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뿐만 아니다. 고종 황제는 중화전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석조전 등 양관(洋館)을, 다른 한쪽으로는 함녕전 등 전통 전각을 배치하는 등 구본신참(舊本新參)의 근대식 궁궐을 지었다. 터에서 ‘자주’와 ‘자존’이 강조된 대한제국의 풍수 배치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대한제국의 진정한 풍수 실력은 환구단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고종 황제는 천제를 치르는 신성한 터를 선정하기 위해 지관(오성근)을 동원했다. 지관은 여러 자리를 물색한 끝에 남별궁 터를 천거했다. 바로 지금의 환구단 터다. 고종은 화강암으로 쌓은 3층의 원형 제단에 황금색 원추형 지붕을 얹은 환구단을 지은 후, 하늘의 최고신인 황천상제(皇天上帝)와 땅의 최고신인 황지지(皇地祗)를 모시고 황제 즉위식을 치렀다. 이어 2년 후인 1899년에는 환구단에 모신 신패를 보관하는 황궁우(皇穹宇)를 건립해 동지마다 제사를 지내곤 했다. 현재 웨스틴조선호텔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팔각형의 3층 목조 건물이 바로 황궁우다.

환구단은 이처럼 천제를 지내는 제단과 황궁우가 쌍으로 이뤄진 구조였다. 아쉽게도 원형 제단은 사라져버렸다. 1910년 대한제국을 병탄한 일본은 1914년에 제단을 헐어버리고 그 대신 조선총독부 직영의 철도호텔(현 웨스틴조선호텔)을 지었다. 하늘에 제사 지내는 신성한 터를 숙박시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대한제국이 ‘천자의 나라’가 아님을 드러낸 정치 선전이자 풍수 침략이었다. 비분강개한 대한제국 청년들이 호텔 공사장을 지키던 일본 헌병을 때려죽이는 일까지 생겼다.

환구단의 원래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 기운만큼은 지금도 생동하고 있다. 환구단 터에 들어선 호텔은 비즈니스와 거래가 잘 성사되는 명당으로 소문나 있다. 실제로 호텔 중심부의 제단 터는 천신과 지신을 모신 자리였던 만큼 땅 밑에서 솟아오르는 강력한 지기(地氣)가 중심 혈장(穴場)을 이루는 가운데 공중에서 천기가 하강해 주위를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다. 황궁우는 그 반대다. 천기가 핵심 혈장을 이루면서 주위의 지기가 보듬는 형국이다.

이처럼 환구단은 마치 음양이 서로 맞물린 태극기 그림처럼 천기와 지기가 조화를 이룬 구조다. 이는 베이징의 제천의식 장소인 천단(天壇)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운이다. 대한제국의 환구단은 중국의 천단보다 규모가 작지만, 그 기운만큼은 천단을 압도했다.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인 것이다. 내년은 고종 승하를 계기로 촉발한 3·1 대한독립선언 100주년이 된다. 풍수인이기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환구단을 원형대로 복원하길 기대하는 게 과도한 바람일까.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대한제국 시절#환구단 제단#황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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