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굴뚝 세 개. 그중 하나는 1930년대 붉은 벽돌로 차곡차곡 30m를 쌓아 올린 것이다. 벽돌 몇 개는 떨어지고 부서졌어도 촘촘히 쌓인 붉은색 견고함이 목포 앞바다와도 잘 어울린다. 나머지 두 개는 1950, 60년대에 지은 철근콘크리트 굴뚝이다.
전남 목포시 온금동 옛 조선내화 목포공장. 이곳은 불과 열에 견디는 벽돌 등 내화물을 생산하던 곳이었다. 1997년 이후 21년째 가동이 중단되었지만 현재까지 남아 있는 흔적들을 둘러보면 과거의 영화가 그대로 전해온다. 1938년부터 1970년대에 걸쳐 지은 여러 채의 공장 건물, 벽돌 야적장, 사무실, 공장장 사택과 테니스장…. 일부 공장 건물은 천장이 무너져 내렸지만 대체로 천장의 철골 트러스 구조가 웅장한 모습을 그대로 뽐내고 있다. 공장 건물 내부엔 벽돌을 구워내던 1960년대식 독일제 일본제 터널가마(길이 70m)가 여전히 웅장하다. 옛 사무실 공간으로 들어가 보면 1960, 70년대 분위기다. 사장실, 사무실, 전화교환실이 있고 “기술 좋다 자랑 말고 품질제일 자랑하자”라는 구호가 눈에 쏙 들어온다.
조선내화는 애초 1930년대 후반 일제가 세운 회사였다. 무기용 철이 필요했던 일제가 이를 위해 제철용 내화벽돌을 이곳 목포공장에서 생산했다. 광복 이후 1953년 목포 기업인 이훈동이 회사를 인수했고 1970년대 이후 포항제철 광양제철 등에 내화벽돌을 집중 공급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997년 공장을 광양, 포항으로 옮기면서 목포공장은 가동이 중단되었다.
조선내화는 보해양조, 행남사와 함께 목포의 3대 기업으로 꼽힌다. 그렇기에 조선내화 목포공장에 대한 목포 사람들의 기억은 더욱 각별하다. 20년 동안 방치하는 바람에 공장 건물이 일부 무너지고 황폐한 느낌을 주지만 이곳을 보수, 복원한다면 멋진 산업유산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최근 목포공장이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공장 건물을 옛 모습대로 되살려 조선내화의 역사를 보여주고 동시에 전시공연장 서점 카페 식당 등 문화생활공간으로 활용한다면 이곳은 몇 년 뒤 목포에서 가장 ‘핫’한 곳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대규모의 양조공장을 방치해오다 문화공간으로 복원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캐나다 토론토의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옛 구더햄 앤드 워츠 양조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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