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CES에서 보니 왜 요즘 젊은 친구들이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르는지 조금은 알 것 같네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못 줘 미안합니다.” 10일(현지 시간)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전시회 ‘CES 2018’을 둘러본 국내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의 말이다.
사물인터넷(IoT)과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등으로 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열린 올해 CES에서 주요 참여국이 보여준 혁신은 위협적이었다. 중국 업체들은 신생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역대 가장 다양한 종류의 산업 분야에서 역량을 과시했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들이 모인 전시장에선 한자가 영어만큼 많이 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중국 업체들의 참여 비중이 높았다는 의미다.
현장에서 만난 한 한국 업체 관계자는 “원격진료를 금지하는 규제가 엄격한 한국에선 원격진료 기기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가 결국 기업의 생사를 가른다”고 했다. 이 회사는 최근 세계 최초로 시도하는 콘셉트의 신제품을 개발 중이지만 원격의료 기기로 분류되면 한국 시장에는 내놓을 수조차 없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서 특별검사팀이 ‘갤럭시S5’에 들어간 심박수·산소포화도 측정 앱 출시와 대통령에 대한 청탁을 연결지은 것만 봐도 원격진료에 대한 한국의 인식 수준을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우리가 규제와 씨름하는 사이 미국 원격의료업체 텔라독(Teladoc)은 이미 2015년 기업 상장에 성공했다. 지난해에만 주가가 110% 이상 뛰는 등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CES 2018에선 중국뿐 아니라 아마존, 구글을 앞세운 미국은 물론이고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마다 새로운 시장을 먼저 차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반면 최근 몇 년 동안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한 한국 기업인들의 입에선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4G 후반기에 오면서 중국이 빠르게 달려가고 있어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걱정해야 할 정도다. 중국 업체들이 한국에서 사간 반도체를 활용해 데이터와 AI 분야에서 우리와 기술 격차를 벌리고 있다”고 했다.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은 “TV와 모바일 등 세트(완제품) 시장이 이미 포화된 상태”라며 “새 성장동력을 찾아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일평 LG전자 최고기술책임자(사장)는 “AI와 빅데이터에서 파생되는 여러 기술이 세상의 모든 판을 바꾸는 속도가 무섭다”며 “우리 같은 기존 산업과 기업의 기반이 모두 바뀔 것 같아 어떻게 업그레이드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CES 2019에선 한국 기업들도 미래에 대한 공포보다는 기대와 설렘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로 전환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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