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성패는 독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중편소설의 갈림길’이라는 화두는 문학계만이 아닌 문화계 전반의 화두일 수 있다. 특정 길이의 글이 선호되고 다른 길이가 위기를 겪는 것은 삶을 읽는 시대의 미각에 편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단편소설은 빠른 호흡을 요구한다. 대중이 단편소설을 편식한다면 우리 시대의 문화가 빠른 호흡을 즐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한다. 스마트폰의 모델 세대교체 속도도 가장 빠르다. 한국 시장은 그 자체로 ‘얼리어답터’이고, 세계 각국에서 만들어진 신제품의 성패를 가늠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문화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화는 장르마다 호흡 속도가 서로 다르다. 시대 변화에 따라 특정 속도의 문화적 호흡이 각광받을 수는 있지만, 다양한 속도의 호흡이 존재하는 생태계가 바람직하다. 단편, 중편, 장편은 서로 다른 호흡으로 읽어내는 삶의 얼굴이다. 그중 하나가 위기라면 다양한 삶을 해석하는 창 중 하나가 닫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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