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5월 1일·22일, 10월 10일, 12월 9일·18일. 지난해 타워크레인 사고가 발생한 날짜들이다. 17명이 안타깝게 생명을 잃었고 37명이 다쳤다. 교통사고로는 지난해 4192명이 사망했다. 그 외에 더 많은 분야와 숫자들이 있으나 생략한다.
오래전 성수대교(1994년)와 삼풍백화점(1995년) 붕괴부터 지난해 평택국제대교 붕괴와 화물차 졸음운전사고,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까지 수많은 안전사고들이 국민들에게 상처로 남아있다. 온 국민을 슬픔과 분노에 빠뜨렸던 세월호 참사도 잊을 수 없는 국가적 아픔이다.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민낯의 숫자들,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던 순간들을 굳이 새해 벽두부터 열거하는 것은 안전의 중요성을 상기하기 위해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함을 거듭 다짐하는 의미도 있다.
정부는 사고와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마련하고 법과 제도를 정비한다. 매뉴얼을 치밀하게 다듬고 현장 훈련도 실시한다. 대책이나 매뉴얼, 훈련의 양을 보면 정부 노력이 부족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안전사고는 줄지 않는다. 촛불민의를 받들어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안전사고가 줄었다고는 체감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지만 기계 등 문명 이기(利器)로 인한 사고도 줄지 않는다.
2012년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5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안전체감도(12위)와 안전중시도(13위)가 모두 낮았다. 주변 환경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안전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는 모순적 경향에 대해 한 심리학자는 우리 사회가 생산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회학자 김동춘 교수는 저서 ‘전쟁과 사회’에서 ‘피난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피난지에서 만난 관계처럼 서로를 대하며 질서와 원칙보다 당장의 이익 추구와 목숨 보존에 여념이 없다고 했다. 이익이 된다면 불법, 편법, 속임수를 가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아직 안전 불감증, 안전경시 풍조가 남아있다면, 이는 앞만 바라보며 달려온 성장주의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이며, 피난사회의 후유증인 것이다.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8.5명꼴로 매년 감소는 하지만 OECD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높다. 반면 일본은 2.91명으로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전국적으로 연간 100여 회 실시되는 교통안전교육을 비롯해 응급의료체계 정비, 도로 안전시설물 보강 등이 일본의 비결로 보인다.
앞서 인용한 2012년 조사 때와 달리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국민들의 안전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관련 청원이 수백 건 올라오고 ‘주차장 안전제도 개선’(가칭 ‘하준이법 청원’)에도 한 달 만에 14만6000여 명이 추천할 만큼 안전한 나라를 향한 국민의 소망과 의지가 커지고 있다.
마침 대통령께서 10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온 힘을 다하겠다며, 2022년까지 자살예방, 교통안전, 산업안전 분야에서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는 ‘국민 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집중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새해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경제력만으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안전 등 사회공동체의 주요 가치에 대한 국민과 기업의 높은 인식 수준과 실천이 수반돼야 한다. 특히, 안전은 정부 의지와 정책만으로는 성과를 만들기 어렵다. 올해 국민과 기업, 정부가 지혜를 모아 안전한 대한민국이라는 아름답고 행복한 작품이 빚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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