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와이에서 지난 토요일 오전 8시 7분(현지 시간) ‘탄도미사일 위협이 하와이로 오고 있다. 즉각 대피소로 가라. 이건 훈련이 아니다’는 비상경보 문자메시지가 주민들에게 전송됐다. 주정부는 13분 후 트위터로 잘못된 경보였다고 밝혔지만 주민들에게 정정 문자메시지가 발송되기까지는 38분이 걸렸다. 그 38분간 하와이는 공포에 휩싸였다. 주민과 관광객들은 집과 호텔에서 뛰쳐나왔고 버스는 멈춰 섰다. 일부 지역엔 비상 사이렌이 울렸다. 한 주민은 “‘이제 다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했고, 한 하원의원은 온 가족이 욕조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이번 경보는 주정부 비상관리국 상황실 근무교대 훈련 중 버튼을 잘못 누른 실수였다. 그 자체만으로는 해프닝이지만 하와이 주민들이 북 미사일 위협을 얼마나 피부로 느끼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하와이주는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월례 대피훈련을 시작했다. 미 언론은 미사일이 북한 발사대를 떠나 하와이에 도달하기까지 30분이 채 안 걸릴 것이며, 경보 후 대피시간은 12분에 불과할 것이라는 주정부 당국자의 말을 전하고 있다.
북핵 위협은 실무자의 버튼 조작 실수로도 이런 패닉이 벌어질 수 있을 만큼 폭발력이 크다. 만약 미국이나 북한 최고위층에서 과장되거나 잘못 해석된 정보, 메시지 오독(誤讀) 등으로 판단착오를 빚을 경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긴장도가 최고조에 이른 상태에서 북 미사일 발사 징후를 놓고 짧은 시간에 판단하고 대응 군사행동을 결정해야 하므로 순간의 결정이 무력충돌 여부를 좌우하게 된다. 그런 우발적·돌발적 요인에 의한 리스크를 최소화할 안전판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북 미사일과 장사정포의 사정거리에 있는 우리의 경보시스템, 비상시 대피시스템 등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국내 진보좌파 세력은 북한의 핵개발이 자위용, 협상용이라는 주장을 끈질기게 펴왔다. 그러나 하와이 주민들의 반응이 보여줬듯이 북핵은 이미 상대방에겐 실제적 공포인 공격용 무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옆자리의 미친 남자가 장전된 총을 들고 와 호신용이라고 주장할 때 그냥 두고 보자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 내에서 북 미사일을 당면하고 실제적인 위험으로 인식하는 여론이 높아질수록 군사 행동에서부터 대화까지 모든 옵션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선택지가 좁아질 수 있어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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