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빌리는 것과 빌려주는 것, 빌린 책을 돌려주는 것을 세 가지 어리석은 일, 삼치(三癡)라 했다. 이 가운데 책 빌려주는 것과 돌려주는 것을 이치(二癡)라 했으며, 여기에 빌려준 책을 아까워하고 그 책을 찾는 것을 더하여 사치(四癡)라고도 했다. 책이 귀하던 시절엔 빌려 읽고 돌려 보며 베껴 쓰는 일이 흔했다. 조선 시대 필사본의 다수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1603년 8월 허균은 정구(鄭逑)에게 이런 편지를 써 보냈다. “책 돌려받기는 더딘 법이라 하지만 더디다 해도 한두 해지요. 빌려간 지 10년이니 이제 돌려주시지요.” 영국 작가 찰스 램(1775∼1834)이 책 빌려간 이들을 꼬집는다. “무서운 약탈자, 책을 빌려가는 족속들. 장서를 훼손시키고 서가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자들.” ‘안씨가훈(顔氏家訓)’이 책 빌린 사람의 예의를 말한다. “빌린 책은 아껴서 잘 간수하고 훼손된 곳은 수선하여 온전하게 만들라.”
빌린 책이 역사를 뒤흔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경방이 외사촌동생 홍수전(1814∼1864)을 찾았다가 기독교 포교서 ‘권세양언(勸世良言)’을 빌려갔다. 이경방은 책을 돌려주면서 아직 읽지 않은 홍수전에게 한 번 읽어보라 권했다. 과거에 거듭 낙방해 실의에 빠진 홍수전은 이 책을 탐독한 뒤 이경방과 함께 종교결사를 창립했다. 청나라 말기 중국을 휩쓴 태평천국 운동의 시작이다.
1921∼1926년 파리에 머물던 시기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도서대여점이자 서점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에서 책을 빌리려 했지만 보증금이 없었다. 서점 주인 실비아 비치가 호의를 베풀었다. “돈 생길 때 내면 된다고 했다. 원하는 책을 얼마든지 빌려가도 된다고 했다. 러시아의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수기’와 D H 로런스의 ‘아들과 연인’을 집어 들자 실비아는 더 빌려 가도 된다고 했다. 러시아 작가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도박꾼과 그 외 단편들’을 더 골랐다.”(‘파리는 날마다 축제’)
에이브러햄 링컨은 어린 시절 책 빌리러 10km 이상 걷는 것이 다반사였다. 사방 수십 km 안에 있는 책이란 책은 모조리 빌려 읽었다. 내가 읽지 않는 책이라도 남에게 빌려주기는 꺼리는 애서가들이 많다. 책 인심을 조금만 풀어보면 어떨까. 빌려준 책이 링컨이나 헤밍웨이 같은 인물을 낳을지 누가 알겠는가.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지만 서재에서 인심 나긴 어려운 것일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