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승헌]‘원조 쇼통’ 오바마의 3가지 꿀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5일 03시 00분


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정도면 한국에선 역대급 ‘쇼통’(쇼+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주 신년 기자회견, 그리고 지지자들이 만들었다는 지하철 광고 말이다. 대통령이 질문할 기자를 고르는 장면은 야당은 물론 해외에서도 ‘신선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통령 지하철 광고는 청와대가 관여한 것은 아니라지만 헌정 사상 처음이다. 문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과 무관치 않은 일이다.

‘쇼통’이란 게 낯설어서 그렇지 나쁜 건 아니다. 대중정치는 얼마나 밖으로 잘 드러내느냐의 싸움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MB)을 만나 “(문 대통령이) 쇼는 기가 막히게 한다”고 했고, MB가 “그것도 능력”이라고 한 것은 “우리는 왜 이런 아이디어가 없을까” 하는 보수세력의 한숨을 대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쇼통’의 완전체인가. 천만에. 퇴임 직전까지 60%대의 지지율을 유지한 21세기 최고의 ‘쇼통’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비교하면 아직 멀었다. 수년간 오바마의 정치 쇼를 봐왔던 기자가 문 대통령이 진짜 ‘쇼통’으로 도약하기 위해 참고할 만한 3가지 장면을 소개한다.

①가끔은 틀을 벗어나야=2015년 6월 26일 오후,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시 실내 경기장. 백인 우월주의자의 총기 난사로 사망한 흑인 피해자들의 영결식장에 참석한 오바마는 갑자기 반주도 없이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하우 스위트 더 사∼운드….” CNN으로 생중계된 대통령의 노래에 6000여 명의 참석자는 피부색에 상관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박수치며 따라 불렀다.

오바마 집권 2기(2013∼2017년)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이 퍼포먼스. 오바마는 영결식장에 가기 전 부인 미셸에게만 “내가 선창하면 사람들이 따라 부를 것”이라고 슬쩍 예고했고, 아직도 회자되는 ‘깜짝 쇼’를 해냈다. 문 대통령의 신년 회견은 이전보다 덜 딱딱하고 특별한 오류는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②비판자도 내편으로=2015년 9월 25일, 미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포트마이어 기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만찬을 코앞에 둔 오바마는 백악관을 떠나 급히 이곳으로 왔다.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의 전역식이 열리는 곳이다. 뎀프시는 ‘이슬람국가(IS)’ 격퇴 전략을 놓고 재임 내내 오바마와 충돌했다. 지상군 파병은 못하겠다는 오바마에게 수차례 이를 건의한 것. 백악관 참모들은 언론에 그의 경질설도 흘렸지만 뎀프시는 4년 임기를 마쳤다. 뎀프시는 전역식에서 “백악관 회의 때 군인으로서 할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를 허용해 준 대통령에게 감사드린다”고 했고, 오바마는 “당신을 친구라 부를 수 있어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다음 날 많은 언론은 ‘제복에 대한 헌사’라고 기사를 썼다. 기자는 아직 문 대통령이 취임식 날처럼 야당 대표를 찾아가 품에 안겠다고 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③‘내 탓이오’=2017년 1월 18일 백악관 내 기자실. 퇴임을 이틀 앞둔 오바마의 마지막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여러분들이 쓴 기사가 다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기자들은 잘못하는 대통령에게 아첨하면 안 되고 거친 질문을 하는 게 맞다. 언론이 비판적 시각을 던졌기 때문에 백악관 사람들도 (이전보다 더)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었다.” 대통령의 고백에 몇몇 기자들은 울었다.

문 대통령은 신년 회견에서 지지자들의 악성 댓글에 대해 “저보다 그런 악플, 비난을 많이 당한 정치인은 없을 것”이라며 담담해지라고 언론에 충고했다. “지지자들이 더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비판도 약이 된다”고 했다면 문 대통령의 압승이었을 것이다. 내년 이맘때는 어떤 ‘쇼통’이 되어 있을지 지켜보겠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오바마#원조 쇼통#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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