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드갈의 한국 블로그]어느날 아이가 엄마를 외면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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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벗드갈 몽골 출신 서울시립대 대학원 행정학과 재학
벗드갈 몽골 출신 서울시립대 대학원 행정학과 재학
필자가 이주민 대상의 라디오 방송 진행을 시작한 지 벌써 4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적지 않은 결혼이주여성과 외국인 근로자, 외국인 유학생 등으로부터 다양한 사연을 받았다. 이 가운데 자주 받는 사연 중 하나가 바로 비자와 관련된 것이다.

한국인들에겐 D-2, D-10, F-6, F-5 등 비자의 종류와 관련된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이 매우 낯설 것이다. 이들의 조합에 따라 외국인들의 체류허가가 달라진다. 필자는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마지막 단계의 체류허가인 영주권(F-5)을 이미 받았다. 더 이상 한국에서 거주하는 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한국인으로 귀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다. 필자와 같은 결혼이주여성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한 번쯤은 해 봤을 것이다.

필자는 몇 달 전 결혼이주여성이 왜 귀화하려는 것인가에 대한 글을 썼다. 그 글의 핵심 내용은 결혼이주여성이 귀화를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자녀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자녀가 학교를 다니기 전에 부모 중 한 명이 외국인이라면 학교에서 혹시 집단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을 갖게 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결혼이주여성들이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동시에 귀화를 신청한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주여성 친구가 있다. 오랜만에 그 친구를 친구의 아들과 함께 만났다. 그런데 고작 여덟 살짜리 초등학생 친구 아들의 태도가 1년 전과는 아주 달랐다. 아이는 엄마와 필자의 대화에 자주 끼어들며 한국어로 말하라며 짜증을 냈다. 엄마가 아들에게 꾸중을 해도 별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 확실히 아이의 태도가 이전과 달랐다.

친구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어 발음이 좋지 않다. 친구 아들은 이런 사정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일 수 있다. 하지만 서툰 엄마의 발음을 비웃고 ‘엄마가 이제 필요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친구의 아들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이의 태도가 갑자기 변하면 나는 얼마나 힘들까? 엄마가 잠시 옆에 없어도 크게 울던 아이가 나를 멀리한다고 생각하면 이보다 더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도대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마 이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다문화가정의 자녀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것이다. 또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엄마를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고 학교에 오는 것도 창피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이 다문화가정의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필자는 서울시의 한 자치구에서 다문화 인식개선 강사로 3년 이상 활동하고 있다. 다문화 인식개선 강사는 출신 국가의 문화를 소개하면서 ‘너와 나 모두 서로를 인정하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내용을 가르친다. 몽골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 출신의 강사가 투입된다. 아쉽게도 강의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한 해에 3∼10번 정도만 강의할 뿐이다.

한번은 유치원 위치를 잘못 알고 엉뚱한 곳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유치원 아이들이 나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에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것을 보고 외면할 수 없어 수업을 진행했다. 어린이집 원장도 다문화 인식개선 수업을 구청에 신청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방문할지 몰랐다며 기뻐했다.

교육부는 2015년 다문화 인식개선에 대해 잠깐 동안 관심을 가졌다. 다문화 인식개선 강사를 같은 해 3월부터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육성했다. 필자도 당시 다문화 인식개선 교육을 2개월 정도 받았다. 함께 교육을 받은 15명 중 필자를 포함해서 2명만이 다문화 인식개선 강사로 최종 선발됐다. 그러나 점점 강사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며 강의 기회 자체가 줄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다문화가정 2세들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정책이 이렇게 되니 안타깝기만 하다. 어떤 기준으로 구청이 다문화 인식개선 수업을 운영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런 수업은 많이 늘려야 할 것 같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는 2011년 3만 명에 불과했으나 2015년 8만여 명, 2016년 10만여 명으로 급증했다. 앞으로 더 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문화가정 자녀의 학업 중단 등 이들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일반 가정과 비교할 때 학업 중단율이 5배나 높다. 전체 다문화가정의 절반 정도는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데, 이들의 자녀는 60% 정도가 6세 이하로 어린 편이다. 이들 중 일부는 3월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이들이 학교에 잘 적응하도록 다문화 인식개선 교육을 더 많이 실시하고 이와 관련된 효율적인 정책도 만들어야 할 때다.

벗드갈 몽골 출신 서울시립대 대학원 행정학과 재학
#결혼이주여성#비자#다문화가정#교육부#다문화 인식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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