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뚱뒤뚱, 아장아장. 마치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이처럼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이 귀여운 걸음으로 오가는 곳. 한국으로부터 1만7240km 떨어진 남극 킹조지섬의 세종과학기지는 이런 깜찍한 친구들과 함께 있어 외롭지 않다.
필자가 현재 머물고 있는 세종기지에서 약 1.5km 떨어진 펭귄마을에는 이 두 종의 펭귄이 서식하고 있다. 펭귄들은 육지로부터 20km나 떨어진 차가운 남극 바다에서 하루 평균 약 8∼14시간 동안 머물며 크릴새우를 잡아 새끼에게 먹이는 모성애를 발휘하고 있다. 크릴새우 등 남극해의 다양한 생물은 펭귄의 먹이가 돼 배설물로 나온다. 또 이 펭귄을 잡아먹는 남극도둑갈매기 등의 포식자에 의해 이 생물자원은 세종기지가 있는 바턴반도 전체로 퍼진다. 이곳의 이끼와 지의류 등도 이 양분으로 살아간다. 세종기지는 이 같은 남극 생태계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다.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2009년에는 펭귄마을을 남극조약에 따른 ‘남극특별보호지역(ASPA) 171호’로 지정받았다. 그 후 펭귄마을에 오는 펭귄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 같은 성과를 내고 있는 세종과학기지가 올해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의 남극 진출은 1970년대 남극과 남빙양에 관심을 가진 수산업 분야의 크릴새우 조업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남극 연구의 중요성과 기지 건설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남극조약에 가입해 기지 건설을 위한 후보지 답사를 통해 1988년 우리나라의 첫 남극 기지인 세종과학기지가 건립됐다.
남극은 연평균 기온이 영하 34도에 이를 정도로 자연환경이 가혹하고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곳이다. 이런 미지의 세계에 대한 국민의 호기심을 학문적으로 밝히고자 하는 의지가 이곳에서의 연구 활동의 기반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극지 연구는 대기과학, 지질학, 육상 및 해양의 생명과학 등에서 많은 과학적 성과를 이뤘다. 세종기지는 수많은 과학자의 연구의 요람이자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기지 주변의 펭귄과 해표를 비롯한 동식물의 기초 현황 조사부터 플랑크톤, 지의류, 선태식물, 현화식물에 이르는 다양한 극지 생물자원을 확인하고 발견하는 성과를 이뤘다.
현재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로 빙하가 급속히 후퇴하고 있고 이와 함께 수많은 생물이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사라지고 있다. 극지생물들이 급격한 환경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예측하는 생물학적 연구와 함께 혹독한 환경에 적응해 온 극지생물에서 유용 물질을 찾아내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세종기지는 기능성 화장품 성분 연구에서는 지의류와 이끼 등의 보습, 자외선 차단, 미백, 주름 개선 성분을 확인하고 특허를 출원한 바 있다.
세종기지의 또 다른 성과는 극지연구와 활동을 통한 외교의 실현이다. 외부와 고립된 남극에서도 여러 사건사고가 발생한다. 각국의 남극 기지들은 비상시 타 국가의 선박이나 인명을 구조하는 데 참여하거나 환자 발생 시 치료와 이송의 편의를 도모하고, 물자가 부족할 때는 서로 도와주는 인류애가 살아 움직이는 곳이다. 특히 이곳에서의 극지과학 연구는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남미 국가들과 친선을 도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남극에서 수송 수단을 잘 구축하고 있는 이들 국가와 공동연구를 시행한다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과학적 성과를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과학 외교를 펼칠 수 있다.
현재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인도만이 남극에서 과학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남극 대륙에 새롭게 건립된 장보고기지를 포함해 우리나라가 남극에서 기지를 건립해 운영하고 연구 활동을 이어간다면 미래 세대인 청소년에게 도전과 개척정신을 심어 줄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극지 연구와 보호 활동의 후발주자임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를 통해 그간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다. 환경과 생물 다양성의 보전이라는 전 지구적인 과제 해결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남극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과학 영토를 확장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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