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은 이따금 신화에서 모티브를 찾아 자기만의 예술을 일군다. 누구인지 밝혀지진 않았지만 1583년 로마에서 발굴된 니오베상의 조각가도 마찬가지였다.
니오베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왕비였다. 남편은 테베의 왕이었다. 자식 복도 많아 일곱 아들에 일곱 딸을 뒀다. 그러다 보니 오만이 하늘을 찌르고, 자식이 둘밖에 없는 라토나 여신마저 우습게 여겼다. 분노한 여신은 쌍둥이 남매인 아폴로 신과 디아나 여신을 불러 복수심을 부추겼다. 아폴로와 디아나는 니오베의 아들들부터 차례로 죽였다. 니오베의 남편은 절망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국 다 죽고 막내딸 하나만 남았다. 막내딸이 공포에 질려 달려오더니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니오베가 막내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신은 무자비했다. 그녀는 넋이 나가고 감각을 잃었다. 오비디우스는 이 장면을 이렇게 시로 읊었다.
“그녀의 얼굴이 굳어지며/피가 빠져나간 것처럼 핼쑥해졌다./머리도/끌로 판 것처럼 굳었다./뜬 눈도 돌이 되었다./몸 전체가 하나의 돌이 되었다.”
그것은 사람을 돌로 만들 정도로 엄청난 상처였다. 돌이 되어서도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자신이 베를 더 잘 짠다고 아테나 여신에게 대들었다가 거미가 되어버린 아라크네의 이야기가 그렇듯, 니오베의 이야기는 신에 대한 오만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며 겸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조각가는 생각이 달랐던지, 니오베가 마주한 실존적 순간에 주목했다.
어머니의 품을 파고드는 딸. 자신의 몸을 대신 내어주려는 것처럼, 오른손으로는 딸의 등을 감싸고 왼손으로는 딸의 몸을 가리려고 옷자락을 끌어당기는 어머니. 그럼에도 고스란히 화살에 노출된 아이의 등. 아이의 살을 뚫을 화살이 날아올 허공을 응시하는, 슬픔이 가득한 어머니의 눈. 이보다 더 슬프고 처연한 모습이 또 있을까.
니오베 조각상의 얼굴에는 신화에서 얘기하는 오만함이 없다.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아이를 보호하려 드는 어머니의 절망스러운 몸부림만이 있다. 조각가가 신화를 그렇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조각가는 신화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신화와는 다른 얘기를 한다. 신의 화살이 인간이 맞설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힘을 나타낸다면, 어머니는 그 속절없는 운명 앞에서도 자식에게 품을 내어주고 화살을 대신 맞으려 한다는 것. 결국 니오베 신화는 신의 노여움이 아니라 야속한 운명에 자식을 잃은 모든 어머니의 아린 사랑 이야기라는 것. 조각가는 그 아린 사랑을 돌에 새겨 영원한 것으로 만들었다. 조각의 놀라운 힘, 조각가의 눈부신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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