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대통령이 ‘분노’를 말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2일 03시 00분


盧 영결식 때 MB에 사과한 文… 궁지 몰린 MB에 ‘분노’ 표현
대통령 ‘분노’ 입에 올리려면… 公憤 대변하거나 국익 걸려야
사적 원한 암시한다면 겁박
‘노무현 금기’ 만드는 것 아닌가… 권력자, 私的 분노 표출 말아야

박제균 논설실장
박제균 논설실장
“A가 화냈다면 B가 잘못한 거지….” 당신 주변을 돌아보라. 오랜 친구나 직장 동료 가운데 A 같은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착하다고 소문난 A. 그래서 누가 A와 다퉜거나 A를 화나게 했다면 그 사람이 잘못한 게 되는…. 문재인 대통령 주변에선 그 A가 대통령 자신 아닌가 싶다.

문 대통령의 착한 성품은 정평이 나 있다. 바로 이런 성품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를 ‘정치가 전혀 안 맞는 사람’으로 봤다. 그런 품성을 극적으로 보여준 때가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영결식이었다. 백원우 현 대통령민정비서관이 분향하는 이명박(MB) 당시 대통령에게 “사죄하라. 어디서 분향을 해. 정치적인 살인이다”라고 고함치다 경호원들에게 끌려 나갔다.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이었던 문 대통령은 영결식이 끝난 뒤 MB에게 “결례가 됐다”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회고록 ‘운명’에서 “노 대통령의 죽음은 정치적 타살이나 진배없었다”고 썼다. 심정적으로는 백 비서관과 마찬가지인데도 “조문 오신 분한테 예의가 아니게 됐다”며 고개 숙일 줄 아는, 문재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성품이야말로 정치에 뜻이 없던 그를 친노들이 똘똘 뭉쳐 대통령으로 밀어준 원동력이었다.

그랬던 ‘우리 이니’가 변한 걸까. 측근들이 구속되고, 자신을 향한 사법의 올가미가 점점 목을 조여 오는 상황에 몰린 전전(前前) 대통령이 내뱉은 한마디에 ‘분노’를 입에 담았다.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 보복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이 그랬듯, 권력의 최정점에 오르자 변한 것인가. 아니면 그가 ‘운명’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너무 조심스럽게 대응한 게 아닌가. 후회가 많이 남는다”고 한 데 대한 해원(解寃)인가.

어쨌거나 ‘분노’란 표현은 권력자가 그렇게 입에 올릴 단어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북한은 세계가 본 적 없는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6년 6월 총기난사 사건 때 “미국인으로서 우리는 슬픔과 분노, 국민을 지키자는 결의로 함께 뭉칠 것”이라고 웅변했다. 대통령이 분노를 말할 때는 국민의 공분(公憤)을 대변하거나 국익이 걸린 때여야 한다.

대통령의 분노가 사적인 원한을 암시한다면 분노의 대상이 된 당사자는 물론 국민에게도 무서운 겁박이다. 문 대통령은 ‘분노’의 이유에 대해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것은 정부에 대한 모욕이자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그가 노 전 대통령 죽음과 관련해 MB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정치적 타살’ ‘정치보복’ 운운한 회고록에 충분히 표현돼 있다.

MB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고 노 전 대통령의 죽음까지 거론한 것은 잘못이다. 평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전직 대통령으로서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청와대와 여당이 나서서 문 대통령 내면의 ‘휴화산’을 건드린 MB가 잘못이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위험하다. 노 전 대통령, 특히 그의 죽음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말란 것인가. 전례 없는 대통령의 분노는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줄 뿐 아니라 노무현을 금기로 만든다는 점에서 더 걱정스럽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나치리만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집착했다. 총격으로 아버지를 보낸 트라우마 탓이 클 것이다. 하지만 그 집착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비운(悲運)에 보낸 트라우마 때문에 노무현에 집착한다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로마 공화정의 창시자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집정관 당시 아들 두 명이 왕정복고 음모에 가담하자 직접 사형을 결정하고 처형 장면까지 목도했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사적인 인연을 칼같이 끊어야 하기 때문에 권력이 위험하고 권력자의 길이 고독한 것이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까지 지독한 절연(絶緣)을 요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최고 권력자라면 사적인 분노를 자제하는 것이, 아니 분노했어도 표출하지 않는 것이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문재인 대통령#노무현 금기#이명박 궁지#백원우 현 대통령민정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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