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호모부커스]<94>참고서, 모두가 읽는 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2일 03시 00분


표정훈 출판평론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학습 요령을 구체화한 국민학교 신교육의 최고지침서.’ 1953년 ‘전과지도서’라는 제목으로 출발한 ‘동아전과’의 당시 광고 문구다. 1956년 ‘표준전과’가 나오면서 전과 양강 시대가 열렸다. 말 그대로 전 과목을 한 권에 담은 전과(全科)는 처음 나올 때부터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 고등학생들의 책상은 ‘수학의 정석’(1966년)과 ‘해법수학’, ‘성문영어’(1967년)와 ‘맨투맨영어’가 나누어 점했다. 정석과 성문이 우세인 가운데 국어는 ‘한샘국어’가 독주했다.

평준화 지역에서 실시되던 연합고사, 즉 고입선발고사 대비에는 ‘…년간 총정리’가 인기였다. 예컨대 ‘17년간 총정리’라면 그 전 17년 동안 출제된 기출 문제를 정리한 것이다. 그 시절 대입 예비고사 및 학력고사 수석 학생들은 이렇게 말했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했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했지 교과서만으로 공부한 건 아니라는 것. 기초를 충실하게 다지며 참고서를 봤다는 뜻이다.

학교가 있으면 교과서가 있고 시험이 있으면 참고서가 있다. 조선의 과거 시험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교 경서를 과거 시험용으로 엮은 ‘삼경사서강경(三經四書講經)’이나 ‘강경초집(講經抄集)’이 인기였다. 논술에 해당하는 책문(策問)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문제집과 모범답안집을 겸한 ‘동국장원책(東國壯元策)’과 ‘동국장원집(東國壯元集)’을 공부했다. 그동안 출제된 문제만 따로 정리해 놓은 ‘과제각체(科題各體)’, 답안 문장 쓰는 법을 담은 ‘과문규식(科文規式)’도 있었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때 과거 수험생이 늘면서 유교 경서와 참고서 수요도 커졌다. 이는 명나라 말기 강남 지방 출판업의 융성으로 이어졌다. 17세기 학자 고염무(顧炎武)가 ‘생원론(生員論)’에서 당시 상황을 전한다. 생원은 현시(縣試)와 부시(府試), 원시(院試)에 차례로 모두 합격한 사람이다. “생원이 현마다 300명 정도라 하고 강남 지방 큰 현에는 어느 곳이건 1000명 이상이니, 천하의 생원은 50만 명에 이른다.”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서 ‘일반도서’는 교과서, 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를 제외한 종이 책을 뜻한다. 이렇게 일반도서에서는 제외되지만 참고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읽는 책일뿐더러 한 시대 공교육의 내용과 제도를 반영한다. ‘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한다. 한 사회는 그 교육의 수준에 맞는 참고서를 갖는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동아전과#참고서#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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