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층나뭇과의 갈잎중간키나무 산수유(山茱萸)는 ‘산에 사는 쉬나무’를 뜻한다. 산수유의 노란 꽃은 잎보다 먼저 핀다. 학명에는 열매를 강조했다. 산수유의 열매는 멧대추처럼 작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산수유를 ‘촉나라에서 나는 신맛의 대추’, 즉 ‘촉산조(蜀酸棗)’라 불렀다. 명대에는 촉산조를 ‘육조(肉棗)’라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수유를 일찍부터 즐겨 심었다. 삼국유사에 제48대 경문왕과 관련해서 산수유가 등장한다.
경문왕은 왕위에 오르자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다. 왕비를 비롯한 궁궐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몰랐지만 오직 모자를 만드는 장인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장인은 평생 이 사실을 남에게 말하지 못하다가 죽을 즈음 도림사 대나무 숲에서 대나무를 향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그 뒤에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왕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대나무를 모두 베고 대신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었다. 그랬더니 그 뒤에는 다만 ‘임금님 귀는 길다’는 소리만 났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에 대나무와 함께 등장하는 산수유는 신라시대 자연생태만이 아니라 정치 문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산수유처럼 사료에 등장하는 한 그루의 나무는 곧 인문생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마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산수유도 양반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전국 어디서나 산수유를 만날 수 있지만 전남 구례군 산동면은 우리나라 최대의 산수유 산지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수령 1000년의 산수유가 살고 있다. 산동면의 산수유는 중국 산둥(山東)성 처자가 시집올 때 가져와서 심은 나무라는 얘기가 전한다. 산동면의 산수유는 열매로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고 해서 ‘대학나무’라 불린다. 경북 의성군 사곡면에도 산동면에 버금가는 산수유가 살고 있다.
나는 산수유 꽃이 필 때마다 꽃송이를 센다. 산수유 꽃은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에서 볼 때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꽃송이는 별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사람도 누구나 가슴에 자신만의 별을 갖고 있다. 인생은 곧 자신만의 별을 빛나게 하는 과정이다. 별은 어둠에서 빛나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어둠을 밝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