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의 과학 에세이]샤워중 번뜩인 생각, 뇌세포의 수다가 만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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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김재호 과학평론가
강원 강릉의 한 아트뮤지엄을 우연히 방문했다. 미술관과 조각공원, 식당과 숙소를 갖추고 있는 그곳은 건물들 자체만으로 진기한 풍경이었다. 특히 피노키오를 모티브로 한 마리오네트 작품들과 건물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람의 조각상은 멋졌다. 2m가 넘는 스테이플러 심으로 만든 악어는 기괴했고, 철사로 움직이도록 한 ‘추락 천사’는 슬프게도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한 땀 한 땀 공을 들인 예술가들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16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뇌의 기능적 연결로 창의력을 예측할 수 있다는 논문이 실렸다. 연구진은 예측 모델에 기반을 둔 기능적 뇌 이미징 분석으로 뇌 신경세포의 연결 구조를 파악하고 활성화 정도를 알아보고자 했다. 뇌기능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참가자 163명의 뇌를 스캔했다. fMRI는 뇌가 활성화할 때 혈류 변화를 측정한다.

실험 참가자들은 여자 113명, 남자 50명으로 평균 나이는 22.5세였다. 대부분 예술이나 과학 분야 전공자였다. 이들은 fMRI 검사를 할 때와 하지 않을 때 각각 발산적 사고 과제를 2개씩 수행했다. 칼과 컵, 벽돌들을 어디에다 쓸지 창의적으로 생각해본 것이다. 4명의 전문가가 5점 척도로 그 결과를 평가했다. 연구진은 교차 및 외부 검증으로 163개 데이터가 유효한지 확인했다.

고도로 창의적인 사람들은 뇌의 전두엽(앞쪽)과 두정엽(위쪽) 영역에서 긴밀한 협조가 이뤄졌다. 최소한의 경로로 효율적인 뇌 활성화를 진행하는 패턴을 나타낸 것이다. 뇌의 이 영역은 거대한 규모의 네트워크, 즉 디폴트 모드, 현출성, 실행 제어의 시스템 내 피질 허브이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즉흥적인 사고와 상상력, 현출성 네트워크는 주변 환경에서 정보 감지와 선별, 실행 제어 네트워크는 인지적 제어와 집중 및 평가와 연관된다. 창의력을 보인 이들은 디폴트 모드와 현출성 네트워크의 연결이 먼저 발생했다. 원래 이 세 네트워크는 반대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비교적 낮은 창의력을 보여준 실험 참여자들은 이미 습득된 답변들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뇌 기능 영역들의 상호작용이 증가했으나 피질 하부나 소뇌, 감각운동을 담당하는 부분들이었다.

기존의 뇌 기능 연구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하는 게 곧바로 어떤 정신적 기능과 연결된다고 간주한 것들이다. 이성은 좌뇌, 예술은 우뇌, 남녀의 두뇌 활성화 차이, 서로 다른 감정과 행동에 대한 이분법적 매핑 등. 더욱이 뇌의 특정 영역이 발달하지 못하면 그에 상응해 다른 쪽이 특별히 더 나아진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치매나 자폐증, 난독증, 안면인식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창의력 혹은 천재성은 뇌 활성화의 집중도를 보여주는 듯했다. 실제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난독증이 심했지만 세기의 천재라고 불릴 만큼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만으로 창의적 사고가 발현되는 패턴으로 규정짓기엔 무리가 있다.

어른의 뇌는 약 1.4kg인데 몸무게를 70kg이라고 가정하면 약 2%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뇌는 혈액의 15%, 산소의 20%, 에너지의 20%를 차지하며 우리 몸을 관할한다. 이제 연구원들은 연구 과정을 거꾸로 가정해 뇌 기능 연결이 창의적 수행의 예측 인자가 되는지 살펴보고 싶어 한다. 더 나아가 글쓰기나 음악의 창의적인 활동들과 특정 기술의 장인에게서 뇌 기능 연결이 비슷하게 나타나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뇌는 회복 탄력성(신경가소성)을 가진다. 따라서 한때 극렬했던 창의성이 계속 유지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뇌 기능의 연결과 활성화가 분석된 것과는 다르게, 활성화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연결된 것일 수 있다. 창의성을 무엇으로 규정할지도 난제다. 실험 참가자들의 경험과 문화적 배경 등도 역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다. 신경세포의 즉각적 혹은 느린 반응과 fMRI로 드러난 데이터 간 시간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뇌의 신경세포들은 지역적으로 분포하며 신경망으로서 기능이 연결돼 있다. 우리가 뭔가를 본다는 사실 하나에도 형태와 색깔, 공간의 파악과 이전 기억들과 비교 등 수많은 뇌의 기능적 작용들이 발생한다. 그래서 창의력은 더더욱 전체 뇌와 관련된 복잡한 신경 메커니즘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 복잡성이란 기억 인출, 의식적 정보 감지와 평가, 인지적 제어가 결합된 과정이다.

결국 창의력이 풍부하다는 건 뇌 기능의 연결들이 더 활성화한다는 뜻이다. 언젠가 뇌 신경망의 연결지도가 온전히 밝혀지면 창의력은 일부 천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될 것이다.

김재호 과학평론가
#창의력#뇌기능자기공명영상#fmri#뇌 기능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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