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40>두 가지 ‘운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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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운명을 달리하다(×)

최근 신문에 실린 기사문이다. 밑줄 친 ①, ②에 주목하면서 오류를 찾아보자.

김제시 한 주택에서 불이나 아버지와 아들이 ①숨졌다.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24분께 김제시 한 단독주택에서 불이나 안모 씨(58)와 아들(26)이 ②운명을 달리했다.(후략)


①과 ②를 같은 의미라 생각한다면 오류를 제대로 찾을 수 없다. ‘숨지다’와 ‘운명을 달리하다’는 같은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만큼 오류인지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최근의 뉴스 기사만을 검색해도 ‘운명을 달리하다’를 ‘죽다, 숨지다’로 잘못 표현한 것을 수백 건 발견할 수 있다.

아래 문장이 올바른 문장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두 사람이 운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뜻은 밑줄 친 ②처럼 두 사람이 모두 죽었을 경우에는 쓸 수 없다. 누군가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어떤 일을 겪고 어떻게 죽는가가 정해져 있다고 쳤을 때 우리는 이를 ‘운명’이라 말한다. ‘운수’나 ‘운’과 비슷한 말로 쓰이는 것이다.

이 의미를 그대로 위 기사에 적용해 보자. ②는 아버지와 아들의 운명이 다르게 되었다고 해석되어야 한다. 둘 중 한 사람은 살아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둘의 운명이 갈렸다는 뜻으로 ‘운명을 달리하다’는 말을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냥 ‘운명을 달리하다’라는 어구 자체를 ‘죽었다’라는 의미로 쓰려고 하는 일이 훨씬 더 많다. 왜 이런 잘못된 표현이 생긴 것일까.

‘운명’이라는 단어는 동음이의어다. 음이 같고 의미가 다른 단어가 두 개라는 말이다.

운명(運命): 이미 정해져 있는 삶과 죽음에 관련된 처지.
운명(殞命): 사람의 목숨이 끊어짐.


위에서 죽음과 관련된 의미는 ‘운명(殞命)’으로 ‘사망’과 같은 뜻이다. 이 단어는 ‘달리하다’라는 말을 덧붙일 필요 없이 ‘죽음’을 의미한다.

운명(運命): 이미 정해져 있는 삶과 죽음에 관련된 처지.
운명(殞命): 사람의 목숨이 끊어짐.


그런데도 우리는 ‘운명을 달리하다’로 써서 ‘죽다’의 의미로 잘못 쓰는 것이다. ‘∼을 달리하다’를 사용해 ‘죽음’을 표현하려면 아래처럼 써야 한다.

어젯밤에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유명(幽明)은 이승과 저승을 함께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 ‘유명을 달리하다’는 이승세계에서 저승세계로 갔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운명하다’처럼 ‘유명하다’라고 표현할 수 없다. ‘달리하다’라는 말이 같이 붙어야 죽음을 의미하는 ‘운명하다’와 같은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맞춤법#동음이의어#운명을 달리하다#유명을 달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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