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부형권]트럼프와 비트코인은 닮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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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국제부장
부형권 국제부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45대·72)의 취임 1년(1월 20일) 성적표는 최악이다. 갤럽 지지율은 지난해 5월 넷째 주(41%) 이후 단 한 번도 40%를 넘지 못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조사 대상 미국인 1988명 중 35%가 ‘트럼프 1년’에 F학점을 줬다”고 보도했다. D학점은 11%, C학점은 14%였다. AP통신은 “미국인 67%가 ‘트럼프 때문에 미국이 더 분열됐다’고 대답했다”고 보도했다. 이대로라면 트럼프의 앞날은 참담할 것이다. 올해 중간선거에서 참패해 여소야대 정국이 될 것이다. 재선은 꿈도 못 꾼다. ‘탄핵’이란 치명타를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反)트럼프 진보좌파 진영의 대표 인사인 마이클 무어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트럼프가 2020년에도 재집권할 것 같다”고 말한다. 2016년 대선 당시 민주당이 ‘힐러리 클린턴 대세론’에 취해 있을 때도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더 높다”고 꾸준히 경고했던 그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기성 정치권에 분노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워싱턴을 향해 던지는 ‘인간 화염병(human molotov cocktail)’이 바로 트럼프다. 그들은 대표적 기성 정치인 ‘힐러리의 미국’엔 어떤 기대도 없다. 그러나 ‘트럼프란 아웃사이더가 대통령이 되면 워싱턴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호기심을 느낀다.”

그들이 트럼프가 수시로 언급하는 ‘잊혀진 사람들(forgotten people)’이다. “기성세력들은 자신들만 보호했지 이 나라 시민들을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승리는 여러분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잊혀져 왔던 여러분이 더 이상 잊혀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2017년 1월 20일 취임사). 트럼프는 기성 체제에 대한 민초의 불만과 분노를 ‘기득권 세력 대 잊혀진 사람들의 대결 구도’로 만들었다. ‘진보좌파 대 보수우파의 이념 대립’만으론 결코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넘어선, ‘못 살겠다 갈아엎자’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현상’은 트럼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민심의 분노에 잘 올라탔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기획 게재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편지 모음’을 꼼꼼히 읽어봐도 한목소리로 집약된다. “트럼프는 말만 하는 기성 정치인들과 확실히 다르다. 다시 또 그를 찍겠다.”

‘기성 체제에 대한 불만과 분노’는 정치와 선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 전방위 트렌드다. 가상통화 비트코인의 탄생도 기성 통화 체제에 대한 일종의 민란(民亂)에서 비롯됐다. 2008,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어떤 정부나 어떤 중앙은행의 영향도 받지 않는, 개인 간 디지털 통화를 만들자’는 문제의식이 그 출발점이었다. 초창기 비트코이너들은 “불법 및 부실 경영으로 망한 대형 은행들을 살려내기 위해 왜 내 소중한 돈(세금)이 구제금융으로 들어가야 하느냐”고 항변했다. 기성세대이자 기득권 세대인 한국의 40, 50대 지인이나 친구들조차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비트코인이 글로벌 민간 통화로서 기능하게 된다면 북한의 도발이나 정부의 경제 실정 같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구조적 리스크’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트럼프는 인기 없는 혼란의 대통령이다. 비트코인은 ‘투기 광풍(狂風)’ 혼돈에 휩싸여 있다. 우린 그런 트럼프에도, 그런 비트코인에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혼란과 혼돈의 현상에만 대처하느라 ‘기성체제와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불만과 분노’란 거대한 저류를 놓쳐선 안 된다. 무지(無知)는 늘 두려움을 낳는다.
 
부형권 국제부장 bookum90@donga.com
#기성 체제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상통화 비트코인의 탄생#투기 광풍#인간 화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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