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인 2001년 2월 한 보직 교수님의 야심 찬 프로젝트에 탑승하게 됐다. 일종의 ‘학생사절단’으로 일본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계 대학인 조선대와 교류의 물꼬를 트는 일이었다. 불과 몇 달 전 첫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가 해빙 분위기였던 때다. 한일 양국의 국립대로서 파트너 격인 도쿄(東京)대에 먼저 들르기도 했다.
2030세대 불만에 놀란 정부
처음에는 일본 출생이면서 북한을 조국으로 여기는 총련계 젊은이들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말을 같이 쓴다는 묘한 감상 탓이었을까. 당시 유행한 드라마 ‘가을동화’를 좋아한다는 유의 사소한 얘기를 나누는데도 가슴에 뜨거운 게 올라왔다. 헤어질 때는 뭐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주머니를 뒤졌다. 당시 1100원짜리 학생회관 식당 토큰뿐이었지만 손에 쥐여줬다. “한국에 오거든 꼭 들러 달라”는 말과 함께. 그 후 소식은 듣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놓고 20, 30대가 반발하는 모습에 다소 어리둥절했다. 탈이념을 추구하는 2030세대가 남북 단일팀을 그저 휴먼 드라마로 여기려니 했다. 그 세대의 끄트머리에 있긴 해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20대를 보낸 개인적 경험도 작용했다. 하물며 문재인 정부는 오죽했을까.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승화시킬 비장의 무기가 핵심 지지층의 반발을 부르자 불에 덴 듯 놀랐다. 민주화와 탈냉전을 등식으로 여기던 86세대 정서로는 해석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권은 허둥댔다. 남한 선수들이 정치적 제물이 됐다는 논란에 꺼내든 게 대의(大義)였다. 문 대통령은 “두고두고 역사의 명장면이 될 것”이라고 달랬지만 약효는 시원찮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큰 역사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가지라”고 거들다가 역효과만 냈다. 여권에선 “젊은층이 보수정권 10년간 통일교육을 못 받아서 단일팀의 의미를 모르는 것 같다”며 화살을 전 정권으로 돌리는 소리까지 나왔다. 헛다리를 짚어도 제대로 짚었다. 촛불정국에서 같이 어깨를 걸었다고 세대차를 잠시 망각했다.
2030세대의 반발을 이해할 실마리는 다른 곳에 있었다. 가상통화 규제를 놓고 또다시 폭발한 그들은 “정부는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대의와 선의라는 함정
대한민국을 바꿨다는 ‘1987세대’(민주화 세대)는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국제시장세대’(산업화세대)와 불화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대의를 위해 개인의 행복을 잠시 미룰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1987세대는 “삶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를 레퍼토리 삼았다. 하지만 2030세대의 시공간은 달라졌다. 국가와 개인의 이해가 상충하는 상황이 도처에 숱하다. 무엇보다 대의에 덜컥 자신을 내어주기엔 돌아올 몫이 불투명하다.
근대국가는 ‘개인들의 필요에 의해 국가가 형성됐다’는 사회계약론에 토대를 두고 있다. 남북 단일팀에 표출된 2030세대의 불만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제 속에 유예됐던 ‘개인의 탄생’을 비로소 알리는 사건일 수 있다. 단일팀에 대한 여론은 올림픽 기간 쓰일 ‘감동 드라마’ 속에 좋아질지 모른다. 그렇다고 2030세대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대의와 선의는 좋다. 그러나 바야흐로 개인의 시대, 대의와 선의가 ‘만능열쇠’일 수 없음을 2030세대가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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