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을 예고한 방식은 의외였다.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가구에 통보할 부담금을 미리 시뮬레이션해서 내놓았다. 의도는 알겠지만 방식이 문제였다.
국토부의 발표에는 부담금 계산 근거가 빠져 있다. 가구당 평균 3억6600만 원, 최고 8억4000만 원을 물어야 한다고만 돼 있다. 부담금 계산을 하려면 재건축이 끝난 뒤의 새 아파트 시세를 예상해야 한다. 국토부는 몇 년 뒤 시세를 얼마로 봤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산정했다”고 했지만 뭐가 어떻게 보수적인지 알 길이 없다.
부과 대상도 밝히지 않았다. 강남 15곳, 서울 기타 지역 5곳을 골라 시뮬레이션했다고 했다. 단지1은 8억4000만 원, 단지2는 6억70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식이다. 누가 얼마를 내야 하는지 모르니 시장에선 난리가 났다.
국토부는 재건축 아파트를 잘못 사면 부담금 폭탄을 맞을 수 있음을 경고하려고 미리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강남 집값은 정상적이지 않다. 강남 집주인 중에도 집값 안정을 바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금 상황에선 1주택자도 꼼짝없이 보유세 폭탄을 맞을 수 있어서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여의도 정치와 다르다. 정책의 상대는 정적(政敵)이 아니라 국민이다. 여의도 정치에서 협박과 엄포가 통하는 건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내가 가진 패를 다 보여주지 않아야 상대가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정치는 말과 명분의 싸움이다.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책은 그래선 안 된다. 절차와 근거로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행정행위를 집행해야 한다. 국민은 행정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다.
국토부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거의 매달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약발이 먹히지 않자 이번에 미래의 부담금 전망치까지 끄집어냈다. 그러다 보니 시장 안정을 유도하는 것과 시장을 상대로 싸우는 것 중 어디쯤에선가 길을 잃고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깜깜이’ 재건축 부담금 예고 발표는 국민들에게 협박과 엄포처럼 들린다. 세금이나 마찬가지인 부담금의 근거를 납부 대상자가 몰라야 할 이유는 없다.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하지 않기 위해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국토부 설명은 조금 구차하다. 한집에서 30∼40년을 산 고령 집주인이든, 집을 산 지 얼마 안 돼 초과 이익이라곤 구경조차 못 한 사람이든, 작정하고 한몫 챙기려는 프로 투기꾼이든 모두 부담금을 내야 한다. 이럴 땐 선의의 시장 참여자가 가장 혼란스러운 법이다.
국토부는 투기꾼을 솎아내겠다고 하지만 방식이 거칠다. 특목고가 사실상 폐지돼 강남으로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은 투기꾼인가. 노무현 정권 때 ‘빚내서 집 사지 마라’는 말을 믿었다가 낭패 본 뒤 뒤늦게 집 한 채 산 사람은 투기꾼인가. 김현미 국토부 장관 본인을 포함한 다주택 장관 9명도 투기꾼 리스트에 포함돼 있는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경제학자 입장에서 투기와 투자는 거의 구분하지 못한다”고 했다.
협박과 엄포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해소되는 순간 힘을 잃는다. 이 경우 여의도 정치에선 더 높은 수위의 협박과 엄포를 하거나 꼬리 자르듯 없던 일로 한다. 말(言)의 정치라서 그렇다. 행정에선 그렇게 하면 신뢰를 잃는다. 다른 정책까지 안 먹히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18일 재건축 허용 연한 연장을 시사했다. “검토한 적 없다”던 국토부 당국자의 1주일 전 발언을 뒤집는 말이었다. 하지만 또 1주일 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연한 연장은) 결정된 바 없다. 부정적 측면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할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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