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공기관 1190곳 중 946곳, 청년 꿈 삼킨 ‘채용비리 공화국’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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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공공기관 275개, 지방공공기관 659개, 공직유관단체 256개 등 1190개 기관 가운데 946개 기관, 단체에서 4788건의 채용비리가 적발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 가운데 83건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고 김상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 등 비리에 연루된 공공기관장 8명은 즉시 해임하기로 했다. 채용비리는 암세포처럼 퍼져 있었다. 감사원 감사나 자체 감사가 있었던 공공기관을 제외하고도 79.5%, 즉 5곳 중 4곳이 채용비리에 연루됐다. 지난 5년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다. 이 정도 비율이면 되레 공정하게 신입사원을 뽑은 기관에 상을 줘야 할 판이다.

채용비리 과정에서는 외부 청탁을 받은 기관장이나 전·현직 고위 직원의 입김이 어김없이 작용했다. 서류전형 합격자수를 늘려 특정 지원자를 채용한 서울대병원은 그나마 죄질이 가벼운 편이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은 불합격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인사위원회를 다시 열었다. 한국석유관리원은 지원자 면접 점수를, 강릉의료원은 정규직 전환 대상자 순위를 조작했다. 자격 미달 지원자를 채용한 기관도 부지기수다. 특정 지원자를 채용하기 위해 다른 지원자들을 들러리로 세운 국가수리과학연구소, 가점 대상자에게 가점을 주지 않아 탈락시키고 그 자리에 지역 유력인사의 자녀를 끼워 넣은 근로복지공단의 사례는 악질적이다. 탈락한 지원자가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심정이 어떨 것인가.

지난주 금융감독원이 은행권 채용비리까지 밝힌 터여서 어제 드러난 공공기관 채용비리에 대한 분노가 더하다. 공공기관과 금융사는 청년들이 선망하는 1순위, 이른바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소 몇 년씩 취업준비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취업준비생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부정하게 합격한 것으로 확인된 직원만 최소 50명이다. 증거가 부족해 수사 대상에서 벗어났거나, 5년 이전 채용한 직원까지 포함하면 얼마나 많은 무자격자들이 월급을 축냈을지 모르는 일이다.

정부는 채용비리로 최종합격자가 뒤바뀐 것으로 확인되면 피해자를 구제해준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채용 평가 기록이 온전히 보관됐다는 보장이 없어 억울한 피해자를 전부 가려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애초에 특정인 채용이 목적이었다면 나머지 지원자의 점수를 제대로 채점했을 리도 없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올바르지도, 신뢰할 수도 없는 사회라는 것을 처절하게 절감한 청년들의 좌절감을 보상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가장 공정할 것으로 믿었던 공공기관이 특권층의 청탁과 부정으로 얼룩진 현실 앞에서, ‘흙수저’밖에 물려주지 못한 스스로를 탓할 부모의 상실감을 달랠 방법은 더더욱 없다.

지난해 청년실업률(9.9%)과 체감실업률(22.7%)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의 꿈을 빼앗은 채용비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이자 사회악이다. 관행처럼 반복돼 온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관련자를 공개하고 무관용, 일벌백계 원칙을 적용해 중징계해야 한다. 이번에는 법이 없어 청탁한 사람을 공개하지 못한다는데, 관련법을 제정해 공개하고 청탁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힘 있는 자, 가진 자끼리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채용비리까지 횡행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공공기관#공공기관 채용비리#청년실업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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