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내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내가 쓰고 연출한 연극 ‘시민K’(1989년 초연) ‘가시밭의 한 송이’(1999년 초연), 그리고 최근의 연극 ‘노숙의 시’(2017년 초연)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이 모두 동아일보 기자라는 인연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세 작품의 남자 주인공은 결국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1980년 3월의 시대적 배경을 극화한 ‘시민K’에 등장하는 동아일보 기자는 29세의 미혼 남성과 24세의 미혼 여성인데,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그려진다. 물론 1980년 3월 실제 동아일보 기자를 모델로 설정한 인물은 아니다. 1980년 봄의 한국적 상황 속에서 누구를 시대의 최전선에 내세울 것인가? 나는 고민 끝에 기자를 시대의 압력을 한 몸에 받아내는 직업인으로 설정했고, 기자 중에서 동아일보 기자를 표준 모델로 정한 셈이다. 왜 하필 동아일보인가?
나 또한 1980년 3월 부산일보 편집부 수습기자였고, 매일 계엄사령부 보도처에 검열받으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나는 당시 부산의 경쟁지였던 국제신문 폐간의 비극을 한 편의 연극 대본으로 쓰리라 마음먹었고, 1986년 1월 신문사에 사직서를 내고 다시 연극인으로 복귀하면서 바로 지식인의 저항과 시련을 다룬 연극 ‘시민K’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1987년 민주화의 가두투쟁이 한창일 때 ‘시민K’ 대본은 완성됐고, 결국 ‘시민K’는 동아일보 기자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내 연극에 등장하는 동아일보 기자 ‘시민K’는 사실 그렇게 진보적이고 실천적인 지식인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인 성향이 분명하지 않은 회색분자로 그려진다. 시민K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여기자는 상당히 저항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고문으로 척추가 마비된 채 오랜 병상생활을 해야 했고,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시작되자 러시아 모스크바로 망명에 가까운 유학을 가서 마르크스 미학을 전공한다. 그러나 시민K는 붙잡혀 가서 정강이 몇 대 군홧발로 차이고 고분고분 자술서를 쓰고 나와 신문사에 복직한다.
‘가시밭의 한 송이’는 복직한 시민K가 러시아 취재를 가서 옛 동료 기자이자 연인이었던 여성과 재회하는 후일담이다. ‘가시밭의 한 송이’는 치유와 재생의 모티브로 쓴 사랑 이야기인데, 윤석화 씨와 송영창 씨가 남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연극이다.
지난해 나는 다시 동아일보 기자를 모델로 한 신작 연극 ‘노숙의 시’를 초연했다. 주인공인 60대 중반의 노신사는 동백림 간첩사건에 연루된 독일 훔볼트대 식물학 교수의 아들로 설정된다. 독일에서 대학을 나온 후 귀국해 1980년 3월 당시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면서 ‘시민K’의 또 다른 유형이 됐고, 해직됐다가 1980년대 중반 복직한 이후 결국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직서를 내고 독일로 돌아간 인물이다. 2016년 겨울 늙은 독거인으로 돌아온 그는 이윽고 촛불혁명의 광화문광장에 등장한다.
나는 왜 그토록 긴 36년이란 기간(1980년 3월부터 2016년 겨울 광화문광장에 이르기까지)을 동아일보 기자를 극 중 모델로 삼아 희곡을 쓰고 연출을 했는가. 도대체 동아일보와 내가 무슨 인연이 있길래…. “동아일보는 항상 시대의 최전선에 있었”기에 내 작품에 등장하는 기자는 동아일보 기자여야 했던 것이다.
동아연극상과 나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나는 네 차례에 걸쳐 연출상을 수상했고 두 차례의 희곡상, 한 차례의 무대미술상까지 받으면서 개인상 일곱 차례 수상 기록을 남겼다. 여기에 대상 두 번, 작품상 두 번의 기록까지 합치면 동아연극상 사상 전무후무한 최다 수상 기록을 세운 셈이다. 동아연극상의 심사 기준이 오로지 작품 위주의 공정성을 유지했기에 학연도, 지연도 없이 서울에 올라온 지역 연극인 이윤택을 한국 연극의 중심으로 이끌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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