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려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대통령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가 중심이 돼 국회와 협의할 대통령의 개헌안을 준비해 달라”고 지시했다. 여야의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만약 국회가 개헌안 합의를 못 하면 대통령 개헌안을 단독으로 국회 의결에 부칠 수도 있다며 국회를 압박한 것이다.
청와대는 6월 13일 지방선거일 국민투표를 목표로 3월 말까지는 정부 개헌안을 국회에 보낸다는 시간표를 갖고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헌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므로 야당이 반대한다면 대통령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야당은 “국회 개헌특위를 무력화하고, 개헌을 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개헌안은 여야가 합의해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야는 개헌안 논의를 서둘러야 하며,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자당 개헌안을 조속히 내놓아야 한다. 여야가 개헌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정부가 낸 개헌안이 야당 반대로 국회에서 부결된다고 해도 문 대통령으로선 약속을 지켰다는 명분을 세울 수 있다. 만약 청와대든 여야든 진지한 개헌 의지 없이 개헌 무산시 책임을 상대에게 넘기려는 속셈으로 개헌 논의에 임한다면 국민적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일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헌의 내용이다. 제헌 70년에 이뤄지는 이번 개헌의 시대정신은 권력 분산과 지방 분권이다. 그러나 현재 청와대와 여당은 국민기본권 확대와 지방분권에만 초점을 두는 분위기다. 대통령정책기획위가 개헌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국민 의견 수렴이라는 명분으로 공론화 조사 등 직접 민주주의적 방식을 취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의 개헌안 마련이 또다시 소모적인 논쟁의 시발점이 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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