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일인 9일 북측 고위급 대표단 단장 자격으로 방문한다. 김영남은 비록 명목뿐이긴 하나 헌법상 국가수반으로 김정은 다음의 공식 서열 2위다. 한국을 방문하는 북한 인사 중 최고위급이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영남의 개별 접견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영남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간 북-미 회동이 이뤄질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올해 90세의 김영남은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명목상 국가원수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자신의 서울 답방 전에 김영남을 먼저 한국에 보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의전상 정상급 예우는 해줘야겠지만 실질적 권한이라곤 없는 김영남과의 만남에서 어떤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올림픽 개막 전날 대규모 열병식을 통해 ‘핵무력’을 과시한 뒤 평창에선 ‘평화’를 선전하겠다는 것이니 큰 기대를 갖기도 어렵다.
북한은 4일 밤늦게 김영남의 파견과 함께 예술단원들을 만경봉92호에 실어 보내겠다고 통보했다. 제멋대로 ‘심야 통보’가 벌써 세 번째다. 특히 북측 선박을 통한 예술단원 수송은 숙식 편의를 위한 것이라지만, 우리 정부의 대북 5·24 조치는 물론 국제적 대북제재에 구멍을 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정부는 이번 올림픽에 한해 예외 조치로 검토하겠다지만 미국 등 국제사회의 오해를 낳지 않도록 긴밀히 협의해 결정해야 한다.
북한의 김영남 파견은 펜스 부통령과의 접촉도 염두에 둔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북-미 회동에 여전히 회의적이다. 오히려 펜스 부통령은 평창이 북한의 선전장으로 이용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송환 엿새 만에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친을 개회식에 초대한 것도 이런 대응 차원이다.
결국 북-미 관계의 결정적 모멘텀이 마련될지는 김정은이 대리인 김영남을 통해 내놓을 메시지에 달려 있다. 최소한 비핵화와 관계개선을 함께 논의할 수 있다는 자세라도 보여야 3월 패럴림픽 폐막까지 북-미 대화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김정은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다시 놓친다면 평창 이후 북한은 더 엄혹한 국제제재 속에서 존망(存亡)의 기로에 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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