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탐욕 앞섰던 지난 정부 문화융성, 즐거움 아닌 절망감 안겨
문화와 스포츠 모두 정치적 의도 없을 때 최고의 감동 줄 수 있어
30년만의 ‘평창 축제’… 문화올림픽 될 수 있길
‘새로 시작하자’와 ‘다시 시작하자’ 두 구절 모두가 앞으로 잘해보자는 뜻을 갖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뉘앙스는 약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지금까지의 것들을 지우고 새로이 무언가를 만들어 가자는 뉘앙스가 강하다. 후자는 지금까지 해온 것들에 대한 반성과 개선을 통해 다시 한번 해보자는 뉘앙스를 갖고 있다.
새 정부 들어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새바람이 불고 있는 것에 필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을 지우려는 일에 방점을 두는 것 같고, 새로 나가야 할 목표나 방향 제시는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다소 불안해 보인다.
필자는 지금 진행되는 적폐청산은 ‘다시 시작하자’라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폐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반성을 통해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쪽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겪은 두 개의 장면이 오버랩된다. 지난 정부와 새 정부에서 정치가 너무 많은 것을 하려 해 문제를 발생시켰다는 점에서다. 문화든 스포츠든 그 자체로 즐기도록 해야 할 텐데, 정치가 너무 많은 것을 하려 할 때, 아니 뒤에 있어야 할 정치가 앞서서 이끌어가려 할 때 항상 사달이 난다.
지난 정부에서 ‘문화 융성’이 정책의 큰 방향 중 하나로 제시됐을 때 필자는 무척 반가웠다. 늦은 감은 있었지만 문화가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는 점에서, 알찬 사업과 계획으로 우리 삶을 한 단계 더 올려주길 기대했다. 그런데 최순실과 주변 사람들이 저지른 전횡의 한가운데에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런 기대가 무너졌고 국민을 분노로 몰아넣었다. 문화의 가치를 모르고 개인 탐욕만을 앞세운 아마추어들과 이들에게 휘둘린 정부의 무관심 때문이었다. 근본 원인은 문화와 예술을 그 자체로 보려 하지 않고, 정치의 관점에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 대가로 문화의 진정한 융성과 발전을 원하는 많은 국민은 눈뜨고 봉변을 당했다.
이틀 후면 평창 겨울올림픽이 개막한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면서 우리 선수들의 가슴에 상처를 준 일이 마음에 걸린다. 다양한 직업의 선수들이 생업을 팽개친 채 올림픽 도전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왔는데, 정부가 선수들과 소통을 생략한 채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다고 통보한 것이 문제를 일으켰다. 남북 단일팀과 평화올림픽이라는 이벤트가 우리 선수들을 감동시키리라는 생각이 너무 안이했다. 평화올림픽을 이루자는 데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지만, 올림픽에 방점을 찍어야 할 일을 평화라는 정치적 메시지에 방점을 찍으려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거부감을 만들어낸 것 같다. 지난 정부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다행인 점은 우리 선수들이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북한 아이스하키팀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선수들의 생일파티를 열어 주며 일체감을 이루고 있고,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용어를 익히면서 소통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마도 남북 단일팀이라는 점에서도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가 더 많은 관심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다른 경기들에도 확산돼 전국 곳곳에서 응원의 함성과 열기가 넘치고 2018년 평창의 겨울을 뜨겁게 달구게 될 것으로 믿는다.
평창 올림픽은 문화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다시 높일 기회이기도 하다. 대회 기간에는 문화올림픽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지난 정부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문체부가 다시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새 정부 들어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을 통해 향후 문화정책 방향에 대한 여론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쉼표가 있는 삶 관광복지사회의 실현’을 꼽은 이가 18%, ‘문화계 블랙리스트 청산’을 선택한 이가 16%,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시대 창조’가 14% 순이었다. 쉼표가 있는 삶과 일상 속에서 삶의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욕구가 32%에 이른다는 점에서 볼 때, 사람들이 문화의 역할에 대해 정치적인 부분보다 일상 속에서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창에서 활짝 핀 문화의 꽃을 국민이 만끽하길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