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겨울올림픽을 보는 시선이 확실히 달라졌다. 무심하던 여론이 올림픽 소식에 귀를 쫑긋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참가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등의 이슈가 꼬리를 물면서다. 매일 아침 숨죽이며 시청률 표를 열어보는 게 직업이라, 달라지는 분위기를 피부로 느낀다.
우리는 올림픽을 주로 메달의 관점에서 소비했다. 이번에 몇 개를 딸지, 누가 메달의 주인공이 될지. 그래서 메달이 없다는 건, 크게 논할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 주목했던 게 메달이었을까. 아마도 이야기(스토리)였을 것이다. 선수들의 무용담 등을 공유하고, 기억하고, 전달하면서 올림픽에 열광했다. 과거 올림픽과 관련해 우리의 기억 속에 메달이 남아 있는지, 스토리가 남아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스토리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그런데 환영받는 스토리엔 어떤 공식이 있다. 주인공들이 고난을 겪고, 그 속에서 힘을 길러 성공과 구원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다른 이에게 교훈이나 감동을 준다. 전형적이지만, 대부분 그랬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 중 하나인 ‘록키’의 구조가 딱 그런 식이다. 채무자들을 협박하는 일로 먹고사는 삼류 복서 록키. 운명의 장난처럼 세계챔피언과 맞붙을 기회를 얻는다. 샌드백이 아닌 쇠고기 덩어리를 치는 고난의 훈련을 하고, 사투 끝에 목표를 달성한다. 관중은 기립 박수를 보낸다. ‘록키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이었다.
우리가 얼마 전 테니스 정현의 호주오픈 4강에 환호했던 이유도, 그 이야기 속에 답이 있다. 고도난시로 렌즈조차 낄 수 없었던 소년이, 흐릿한 안경을 끼고 시속 200km의 속도로 전개되는 경기를 지배했다. 백인들이 지배하던 무대에서 주눅 들지도 않고, 오히려 여유를 보였다.
그럼 이번 평창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보면, 이번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저항할 수 없이 탄탄한 구조를 갖췄다. 가뜩이나 열악한 대표팀에, 남북 단일팀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슈가 터졌다. 4년간 땀 흘린 선수들의 기회 박탈 문제가 불거져 여론이 들끓었고, 전력 약화에 대한 염려도 커졌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과 국민은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유대감은 스토리텔링의 핵심 조건이다. 유대감이 없으면, 나중에 결말이 어떻든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단일팀으로 구성된 선수들은 고난을 극복해 나간다. 남북한 선수들이 생일 파티를 함께 하며 마음을 맞추고, 서로 다른 언어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영어가 우리말로 통역되고, 또 북한말로 통역되는 지난한 과정을 감수하며 손발을 맞췄다. 조직력이 무너지는 걸 극복하기 위해 4일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 몸을 던졌다. 국민의 마음을 한 번 더 끌어당겼다.
록키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었다. 챔피언과의 경기에서 무너지지 않고, 오래 버티는 것이었다. 사투 끝에 목표를 이룬 그가 애인 에이드리언을 껴안을 때 관중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의 과정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목표 역시 메달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경기다. 국민은 그들의 성취와 상관없이, 투혼 자체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사람 욕심이라는 게 그렇다. 기왕 출전하는 거 1승을 달성했으면 좋겠다. 그 1승이 빅매치인 한일전에서 나온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이 스토리, 올림픽사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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