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뭇과의 늘푸른큰키나무인 소나무는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유일하게 경북 안동 제비원에 설화가 남아 있다. 소나무 설화는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독한 사랑을 반영하고 있다.
소나무를 의미하는 한자는 송(松)이다. 목(木)과 공(公)을 합한 ‘송’은 나무에 ‘공’이라는 벼슬을 부여한 가장 이른 시기의 사례로 꼽힌다. 중국의 ‘사기(史記)’ 중 ‘시황제본기(始皇帝本紀) 봉선서(封禪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진시황제가 제사를 지내기 위해 태산(泰山)에 올랐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인근 나무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진시황제는 소나기가 그치자 그 나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오대부(五大夫)’라는 벼슬을 내렸다. 현재 태산 중턱에는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소나무가 살고 있다. 속리산의 천연기념물 제103호 ‘정이품송(正二品松)’도 조선시대 세조 임금이 손가마를 타고 이곳을 지나다가 소나무가 땅에 닿은 가지를 스스로 올리자 벼슬을 내린 소나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척 사랑한 덕분에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적송(赤松)은 줄기가 붉어서, ‘춘양목(春陽木)’은 경북 봉화군 춘양이 소나무를 집산(集散)하던 곳이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금강송(金剛松)’은 나무의 속이 금강석처럼 아주 단단해서 붙인 이름이다. 주로 경북 북부와 강원도 등지에서 자라는 금강송은 경복궁을 비롯한 우리나라 주요 목조 건물의 핵심 재료였다. 특히 소나무는 2005년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에서 발굴된 8000년 전 신석기 시대의 배에서 알 수 있듯이 배를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나무였다. 우리나라가 임진왜란 때 일본과의 해전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소나무로 만든 병선 때문이었다.
소나무의 곧고 푸른 모습은 ‘군자의 절개’ ‘송죽 같은 절개’ ‘송백의 절개’ 등에서 보듯 절개를 상징한다. 중국 춘추시대 말 공자도 인간의 태도를 소나무의 모습에 비유했다. ‘논어 자한(子罕)’에서 공자가 언급한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뒤에 시든다는 것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라는 구절은 인간의 본심이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푸른 소나무의 모습은 여름에는 갈잎나무와 다르지 않지만 갈잎나무의 잎이 물들 때 두드러진다. 사람의 본심은 평소에는 알 수 없지만 큰일을 만났을 때나 이해관계에 놓였을 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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