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이 4일부터 시행됐다. 많은 논의와 심사숙고 끝에 어렵게 제정됐다. 그럼에도 시행 이후에도 더욱 신중하고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생명에 관한 법이기 때문이다. “10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형사소송법의 기조가 이곳에서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잠수종과 나비’라는 영화가 있다. 1997년 발간된 동명의 책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 책은 뇌중풍으로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이라는 병에 걸린 프랑스의 유명 잡지 편집장인 장도미니크 보비가 쓴 자신의 이야기다. 감금증후군은 말기 근육병이나 루게릭병처럼 의식과 인지 기능은 정상이지만 사지마비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이다. 저자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기능인 눈 깜빡거림으로 엄청난 노력 끝에 이 책을 저술했다. 자신의 신체 상태를 머구리 잠수복을 입고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물속에 갇혀 있는 것에, 멀쩡한 자신의 의식은 날아다니는 나비에 비유해 제목을 붙였다.
20년 이상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고 신체의 극히 일부분만 동작이 가능한 근육병과 루게릭병 환자들을 진료해 오는 동안 수많은 환자를 경험했다. 하지만 환자들이 일상을 그들의 눈으로 보면서 느끼는 생각들은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항상 있었다. 영화에서는 환자의 의사를 파악하려는 듯 하는 모습만 취하고 자기의 뜻을 말해 버리는 주변 사람들이 종종 나온다. 우리는 이 법 시행에 있어서 이러한 의도적 외면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심리학적으로 심각한 장애를 겪으면 모든 사람이 절망, 좌절, 분노 등의 심리 상태를 겪는다. 그런 상황들이 계속되다 환자들은 결국 모든 것을 체념할까. 아무리 애를 써도 할 수 없는 많은 것에 대한 어두운 체념의 기운이 이 책에 분명히 깃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책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잠수복이 한결 덜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나의 정신은 비로소 나비처럼 길을 나선다.” 작가는 20만 번 이상 눈을 깜빡여 책을 완성했다. 우리의 평균을 능가하는 의지와 집념을 보여준 것이다. 더불어 이 책에는 우리가 지나치는 일상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하고 상상의 날개를 달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자신만의 삶이 묘사된다.
본인이 직접 의향서를 작성했다 하더라도 인지 기능이 있는 경우라면 심리 변화 과정을 거쳐 자신의 삶의 방식을 찾은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불편한 신체로 제한적인 의사 표시밖에 할 수 없다면 주변의 개입 여부에 따라 환자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에 세밀한 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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