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훈상]홍준표가 처칠을 조금이라도 따라가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8일 03시 00분


박훈상 정치부 기자
박훈상 정치부 기자
“영국을 지키는 처칠의 모습에서 진정한 지도자상을 봤습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달 30일 오후 11시경 페이스북에 직접 올린 글의 일부분이다. 영국의 전설적인 총리 윈스턴 처칠을 다룬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어둠의 시간)를 가족과 함께 보고 난 직후였다. 홍 대표는 “히틀러의 위장 평화 공세에 속아 평화협상을 주장하는 (전임 총리) 네빌 체임벌린에게 (처칠이) 맞섰다. 북한의 위장 평화 공세에 넘어가 나라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꼭 봐야 할 영화”라고도 했다.

홍 대표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총리를 지낸 체임벌린과 처칠 이야기를 동시에 꺼내기 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4월 대통령 선거 유세 때부터였다. 홍 대표는 “힘의 우위를 통한 무장평화만이 북한을 제압할 수 있다”며 경쟁자였던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던 지난해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관련 광복절 경축사에도 강하게 반발했다. 최근에도 “평창 올림픽을 평양 올림픽으로 만들면서 김정은이 하고 있는 위장 평화 공세에 같이 놀아나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이런 언급에선 문 대통령을 실패한 유화론자 체임벌린에 가두고, 홍 대표 자신을 불도저와 같은 영웅 처칠에 견주려는 의도가 보인다. 물론 홍 대표는 최근 사석에서 “내가 (스스로를) 처칠이라고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체임벌린이 문 대통령이면, 처칠은 대표라는 이야기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기자가 실제로 처칠의 전기를 읽어보니 홍 대표와 처칠은 다른 점이 더 많다. 처칠은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주류 중의 주류였다. 스스로 ‘변방’을 자처한 홍 대표와는 차이가 난다. 처칠의 진면목 중 하나는 바로 말과 글의 품격이다. 2차 세계대전을 진두지휘한 자신만의 경험과 철저한 고증을 접목한 그는 ‘2차 세계대전’을 집필했다. 이 책으로 1953년 정치인으로서 노벨평화상이 아닌 노벨문학상을 이례적으로 수상했다. 한 언론이 ‘필설(筆舌) 양면에 걸친 유려한 언어 구사로 반세기 이상 그의 찬미자들을 기쁨에 넘치게 하였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처칠은 시간이 날 때마다 글 쓰는 일을 즐겼다. 히틀러의 독일 재무장 야욕을 알리기 위해 신문에 열심히 글을 기고하고, 대중 집회에서 열정적으로 연설했다. 독자는 히틀러가 위험한 인물임을 깨닫고, 청중은 맞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슴에 품었다. 대중을 어떻게 설득할지를 밤낮으로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였다.

반면 홍 대표의 필설은 자주 논란에 휩싸인다. 당내에선 홍 대표가 보좌진의 도움 없이 곧바로 입력하는 페이스북 글쓰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즉흥적이고 과하다는 것이다. 당 차원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팀을 구성해 사전에 팩트체크를 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나온다.

둘 다 히틀러와 북한이라는 적을 앞두고 있고, 보수정당 소속이라는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안보환경은 처칠 당시의 영국보다 더 혼란스러울 수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화가 중요한지, 압박 일변도가 효과가 있는지 누구도 알기 어렵다. 홍 대표가 보수 야당 대표로 진정 영웅이 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페이스북을 멈추고 처칠처럼 대중을 설득할 각고의 노력부터 하면 어떨까. ‘포스트 올림픽’을 고민해야 할 이 시기에도 홍 대표의 안보정책보다 페이스북 발언 실수가 더 관심을 끌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홍 대표에게도 손해다.

박훈상 정치부 기자 tigermask@donga.com


#자유한국당#홍준표#윈스턴 처칠#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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