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서혜림]홍대앞만 쫓겨나는 게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9일 03시 00분


서혜림
우리 동네에는 귀농·귀촌 투어 필수 코스가 여럿 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단연 맛집이다. 시골에서도 점심은 거의 사먹는다. 농번기에 새참을 머리에 이고 와서 농막에 둘러앉아 밥 먹던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예전처럼 여럿이 밭에서 일하지도 않고, 한두 사람 먹자고 번잡스럽게 새참을 준비하기도 어렵다.

귀농·귀촌 인구가 많은 지역이라 젊은 농부가 많은데 점심만이라도 잘 먹어보자는 뜻을 모아 몇 년 전 ‘생미’라는 식당이 생겼다. ‘밥 먹자’라는 모토의 이 식당은 매출 대비 무려 47%를 식자재비로 쓴다. ‘시골식당 스왜그(swag)’라고 말할 정도로 음식이 훌륭하다. 점심에는 7000원이면 식판에 다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반찬이 나온다. 지역의 유기농 식자재를 이용하기 때문에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주민들은 균형 잡힌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이제 다음 달이면 이 균형 잡힌 영양 식사를 더 이상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생미가 갑작스레 폐업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유를 들어보니 최근 화재로 리모델링까지 마쳤는데 월세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랐다고 한다. ‘잘 먹어보자’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지역의 식사공동체가 사라질 위기의 원인은 영업 부진이 아니라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다.

생미뿐 아니라 커뮤니티 펍(community pub)의 좋은 사례였던 ‘뜰’도 비슷한 이유로 1층에서 2층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로컬푸드 유기농 전문 식당인 ‘행복나누기’ 사장님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계셨다. 홍대 이야기가 아니다. 인구 3000명 수준의 작은 면 단위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이다.

초등학생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건물주라고 대답하는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이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과 월세는 도시 젊은이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성공한 젊은 사장들이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쫓겨나 지역의 색깔이 사라져 가는 거리가 넘쳐난다. 도시경제가 발전하는 동안 낙후되었던 농촌지역에 최근 젊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런 부동산 호재가 시골 건물주들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로 느껴지는 것 같다. 대한민국 전체의 숨통을 조이는 월세와 부동산 값이 시골에선 덜할 거라는 생각이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시골에 온 3년 사이, 정을 주었던 식당 하나는 벌써 문을 닫았고 커뮤니티 펍은 2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른 식당은 이제 폐업을 선언했고 그 옆에 있는 맥줏집도 동반 폐업을 하기로 했다. 또 다른 식당도 비슷한 걱정으로 한숨짓고 있다.

한 마을이 온전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우체국, 도서관, 마트, 은행, 식당, 학교, 술집 등이 필요하다. 선택의 여지가 적은 작은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일에 더 빠르게 타격을 받는다. 이제 겨우 모양새를 갖추어가는 지역의 발목을 붙잡는 부동산 문제를 풀어낼 묘안은 없을까.

서혜림
 
※필자는 인천에서 생활하다가 2015년 충남 홍성으로 귀촌하여 청년들의 미디어협동조합 로컬스토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귀농 귀촌 투어#시골식당 스왜그#유기농 식자재#지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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