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1985년 데자뷔다. 김여정의 방한으로 절정에 이른 김정은의 신년 대남 평화공세는 1985년 9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예술공연단 교환 방문으로 정점에 이른 할아버지 김일성의 그것과 유사한 대목이 많다.
북한은 특대형 도발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1983년 10월엔 미얀마 아웅산 묘지 폭발 사건 하루 전이었다.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2년간 전략 도발을 계속한 북한은 지난해 말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불쑥 내민 손을 남한이 받아들인 계기도 있다. 1984년 남한 수해였고, 9일 개막한 평창 겨울올림픽이다. 당시 남북도 수차례 공식 비밀 회담을 벌였다. 행사 진행을 전후해 북측의 허담 대남 담당 비서가 서울에 와 전두환 대통령을 만났고 장세동 안기부장이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김 주석과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까지 논의됐던 남북 대화 국면은 그러나 1986년 1월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평양은 팀스피릿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했고 서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측은 애당초 진정성이 없었다. 훗날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김 주석은 1984년 5월 에리히 호네커 동독 서기장에게 “로널드 레이건 미 행정부의 주한미군 군사력 증강을 막기 위해 대화를 제의한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최근 김정은의 속셈도 지난해 등장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적 압박 정책을 완화하고 겹겹이 쌓인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어 보려는 것이 분명하다. 북측은 이미 한미가 4월 이후로 연기한 키리졸브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남북 대화도 평창 올림픽과 함께 끝날 운명인가.
최근 제3국에서 북측 관계자를 만난 한 대북 소식통의 전언은 다소나마 희망을 갖게 한다. 지난해 말 평양에서는 향후 대외관계 전략과 관련해 논쟁이 있었고 지금의 제재하에서는 경제가 1년도 못 버틸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북한 최고지도부도 핵 문제를 이대로 계속 가지고 갈 수 없으며 미국과의 대화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신년사 이후 김정은은 남한의 마음을 얻고 대외적으로 평화 이미지를 심는 데 자신의 정치적 자원을 그야말로 ‘통 크게’ 쏟아붓고 있다. 서해 직항로를 날아 대한민국의 대문인 인천공항에 내린 전용기에 PRK-615라는 편명을 달아 2000년 남북 정상회담 합의사항 준수를 강조했다. 전날 평양에서 열린 건군절 열병식에선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하지 않고 생중계도 포기하는 등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8일 한국에 도착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등이 연일 대북 강경 발언을 내놓고 있는 것도 물밑으로 전해지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읽었기 때문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고분고분한 북한’이 필요하다. ‘미국 보수 강경파’들의 반발을 달래며 북한과 대화 테이블에 앉기 위해서는 ‘우리가 강하게 몰아붙이니까 북한이 나왔다’는 명분을 만들 필요가 있다.
김정은은 미국의 선거 결과를 볼 때까지 시간을 끌며 다음 수를 두고 싶겠지만 목까지 차오른 제재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다. 우리가 평창 이후 북-미 대화 국면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반대로 김정은이 1985년 할아버지처럼 한미 훈련을 핑계로 핵·미사일 전략 도발로 돌아선다면? 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가 ‘코피 작전’ 이상의 군사조치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게 워싱턴의 기류다. 그것은 또 다른 거대한 한반도 정세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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