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44〉‘오회말카드’를 뜯어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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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너무 ①일해라 절해라 마세요.(중략) ②바람물질 생겨요. 인생은 ③오회말카드에 정답 표시하는 ④시엄문제가 아니잖아요?

1월 31일자 ‘맞춤법의 재발견41’에 달린 댓글의 일부다. 이런 황당 맞춤법을 활용한 개그에 우리말의 질서가 들었다면 이상할까? 실제로 ①∼④에는 우리의 말소리 원리가 반영돼 있다.

②부터 보자. ②번에는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발음 원리가 들었다. ‘발암’과 ‘바람’이 발음상 동음이의어임을 활용한 개그다. 실제로 음절의 첫소리에 적는 ‘ㅇ’은 빈칸임을 기억하자. 그 빈칸에 앞말의 받침을 이어 적은 것이 ‘바람물질’이니 그리 어색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 ①, ③, ④에는 어떤 질서가 들었을까? 놀랍게도 같은 음운현상이 관여한다. 역시 쉬운 것을 선택해 ④를 보자. ‘시험→시엄’에는 ‘ㅎ’이 탈락하는 현상이 관여한다. 우리말에서 ‘ㅎ’ 탈락 현상은 생각보다 흔한 것이다. 예로 확인해 보자.

결혼[겨론(×)], 다행히[다행이(×)],
이해[이애(×)], 철회[처뢰(×)]


모두 표준발음법에는 어긋나지만 우리가 자주 만나는 발음들이다. 지역 방언에서는 이런 ‘ㅎ’ 탈락이 훨씬 더 자주 일어난다. 모음과 모음 사이나 ‘ㄹ’과 모음 사이의 ‘ㅎ’이 아주 약한 소리여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일이다. 그 현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④번 개그다.

그런데 어떤 현상이 자주 일어나면, 이에 대한 반작용이 생긴다. 규범에서 ‘ㅎ’을 탈락시킨 발음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면 그런 발음을 피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과하다 보면 ‘ㅎ’이 탈락과 무관한 것에까지 ‘ㅎ’을 삽입하는 일도 생긴다. 이 과도 적용 원리가 ‘이래라 저래라’가 ‘일해라 절해라’로 둔갑하게 된 이유다.

거꾸로 된 과정을 따라가 보자. ‘일해라 절해라’에서 ‘ㅎ’이 탈락해 ‘일애라 절애라’가 되면 ‘ㄹ’이 뒤의 빈자리로 이동해 ‘이래라 저래라’가 된다. 이런 절차를 상정하고 ‘ㅎ’을 복원해 만든 것이 ‘일해라 절해라’인 것이다. ③의 ‘오회말카드’ 역시 비슷한 설명이 가능하다. 원말은 ‘오엠알 카드’다. ‘ㅎ’이 탈락했다 치면 ‘오헴알 카드’가 된다. 이를 비슷한 발음인 ‘오회말 카드’로 둔갑시킨 것이 ③번 개그의 생성 원리다.

물론 ①∼④ 모두 맞춤법으로는 황당한 항목들이다. 이런 식의 말장난을 ‘언어유희’라는 수사적 영역에 넣어 명확히 구분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이런 황당 맞춤법을 생성하는 데조차 말소리 원리가 관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우리의 말소리 원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것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우스개가 아닌 본령의 말들에 적용되는 중요 원리들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어지질 않는가?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맞춤법#말소리 원리#음운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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