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7일 오후 10시 29분경 대전 유성구 KAIST 본원 자연과학동(E6-4) 3층의 화학과 실험실에서 대학원생 1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실험 도중 플라스크 속 유기화합물이 폭발하면서 깨진 유리 파편이 손과 팔, 얼굴, 가슴 등에 박힌 것이다. 실험용 후드의 가림막도 충분히 전개돼 있지 않았고 학생은 실험복과 장갑은 물론이고 보안경도 쓰지 않은 상태였다. 자칫하면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3일 KAIST에 통보한 사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석·박사 통합과정 1년차인 사고 학생은 당시 폭발을 일으킨 물질(카보닐 디아자이드)의 민감도나 폭발 위력 등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험실 안전교육이나 연구과제와 관련된 사전 교육은 받았지만, 사전 유해인자 교육은 받지 못했다.
학생은 사고 당일 위험물질을 처음 다뤘지만, 당시 실험실에는 안전을 책임져야 할 지도교수는 물론이고 곁에서 실험을 도와주는 선배도 없었다. 이에 대해 사고 학생의 지도교수는 “대학원에 진학한 뒤 2, 3개월이 지나면 보통 독립적으로 자신의 실험을 하게 된다”며 “이번 사고는 물질의 특성(폭발성)에 따른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대학은 연구기관이나 기업 연구소에 비해 숙련되지 않은 연구자들(학생)이 많다. 하지만 안전관리 인력이나 예산, 장비 등은 오히려 부족해 실험실 사고에 더 취약하다. 지난해 보고된 실험실 사고 234건 중 88%(206건)는 대학에서 발생했다. 2012년부터 최근 6년간 발생한 중대 사고(신체 부위 절단, 안구 손상, 화상 등) 5건도 모두 대학에서였다.
현행법상 실험실 안전을 기관과 연구자들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도록 돼 있다는 점도 근본적인 한계다. 위반 사실이 적발되어도 과태료가 미미하거나 경고 조치에 그친다. 지난해 과기정통부가 실시한 연구실 안전관리 현장검사에서도 실험실 점검·진단 미실시(30.8%), 안전관리 규정 위반(19.5%) 등의 비중이 높았다. 특히 대학에서는 연구 책임자가 사전 유해인자 위험 분석을 실시하지 않은 실험실이 68%나 됐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경우에는 교수 등 연구 책임자가 연구비 예산의 1%까지 안전관리비(간접비)로 쓰도록 되어 있지만, 이 역시 강제성이 없다.
이공계 대학 실험실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이 맡은 연구과제 실험을 지도교수나 안전관리 책임자의 감독 없이 혼자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실 규모가 클수록 더 그렇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둘씩 안전관리가 허술해지는 틈에 대학 실험실은 각종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고 있다. 안전에는 ‘적당히’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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