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때 궁중(태의원) 의관이었던 유중림은 숙종 때 어의였던 유상의 아들로 ‘증보산림경제’를 저술했다. 이 책에서 유중림은 2대를 거친 풍부한 의학적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무자식인 남성을 위해 세 가지 처방을 제시했다. 고본건양탕, 오자연종환, 가미쌍보환이 그것으로, 이 세 처방에는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약물이 있었다. 바로 새삼(토사·兎絲)이다.
옛 조상들은 정월대보름 쥐불놀이를 하며 새삼을 찾는 이벤트를 벌였다. 대나무 밭에서 쥐불을 비추면 대나무 줄기 사이로 뻗은 새삼이 마치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식물의 줄기를 감고 생장하는 모습이 마치 하늘에 매달린 인삼처럼 보이는 것. ‘땅에는 인삼, 바다에 해삼이 있다면 하늘에는 새삼이 있다’는 말도 여기서 비롯됐다.
우리 조상들이 정월대보름에 쥐불놀이로 밤을 밝히고 새삼을 찾아 먹으려 애쓴 이유는 겨울이 끝나는 지점에서 마지막 추위를 이겨낼 양기(陽氣)를 얻기 위해서였다. 쥐불놀이 때 새삼을 발견하고선 “새삼 밭에 불이여”라고 외친 것도, 새삼의 씨를 토사자(兎絲子)로 부른 이유도 이런 양적(陽的) 능력과 연관이 있다. 뒷다리가 발달해 하체가 풍성한 토끼는 여인의 앉은 모습을 꼭 닮았다. 토끼는 음(陰)을 대표하는 동물로 분류되며 십이지(十二支) 중에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달에서 방아를 찧는 동물이 유독 토끼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토끼의 모습은 음적(陰的)이지만 하는 행동은 모두 양적이다. 용왕을 속이는 영리함과 뱀처럼 구멍을 잘 파는 능력은 양(陽)의 상징이다. 교활한 토끼는 세 개의 구멍을 파 천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새삼은 예부터 조선산(産)이 최고로 여겨졌다. 중국의 본초서인 명의별록은 ‘조선의 냇가나 연못, 밭, 들판에서 토사자를 산출한다’며 그 원산지를 조선으로 명시했다. 심지어 명의 고관대작은 새삼을 구하려 조선 조정에 압력을 넣기도 했다. 중종실록(37년)에는 “대국(명나라)의 재상 하언(夏言)이 토사자를 청하니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지 10근만 보냅니다”라는 기록도 있다.
실제 토사자는 가까운 과거에도 양기를 북돋우는 최적의 약물로 각광받았다. 증보산림경제의 세 개 처방은 물론이고 민간에 전해온 처방도 이런 약효를 재확인한다. “토사자를 술에 눅여 가루를 만들고 참새 알 흰자와 섞어 환약을 빚은 후 70알씩 따뜻한 술과 함께 먹는다. 그러면 남자의 정액이 차고 맑아져 무정자증을 치료한다. 자식을 얻는 데 있어 참으로 신비한 처방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새삼의 강력한 약효가 언급돼 있다. 특히 양기를 돋우는 토사자의 성질을 강조했는데 심지어 ‘너무 많이 먹으면 열이 올라와 종기가 생기는 부작용이 있다’는 경고까지 덧붙였다. 그 정도로 새삼은 양기가 강한 약물로 여겨졌다.
영조는 이런 토사자의 약효를 십분 이용한 임금 중 한 사람이었다. 영조는 어릴 때부터 하원(下元), 즉 양기가 약해 소변을 보기 힘들어하거나 소변이 잦아 고생을 했다. 소변을 보는 일은 물총을 쏘는 원리와 다를 게 없다. 오줌발이 세면 한꺼번에 나가지만 힘이 없으면 짜내다가 역류해 잔뇨감을 일으킨다. 영조 2년 10월 14일 승정원일기엔 ‘어릴 때부터 그런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더욱 심해져 하룻밤에 수차례씩 소변을 본다. 특히 이번 제사 때는 소변이 심히 마려워 실례를 할 뻔했다’라고 곤혹스러워한 기록이 있다. 심지어 ‘소변이 방울방울 떨어져 고통스럽다’며 이런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토사자를 십수 차례 먹었다’고 고백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전립샘비대증이나 전립샘염을 치료할 목적으로 토사자를 상용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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