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승옥]더 행복한 올림픽 순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8일 03시 00분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과 미국은 자존심을 걸고 순위 싸움을 벌였다. 개최국 중국은 올림픽을 통해 신흥 강국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과시하려 했고, 미국은 이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단순 메달 경쟁이 아니었다.

중국은 전략 종목을 휩쓸며 비약적으로 금메달 수를 늘렸다. 금메달 48개로, 미국(36개)을 무려 12개 차로 누르고 종합 1위에 올랐다. 그런데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 언론은 총 메달 수를 기준으로, 미국을 종합 1위에 올렸다. 금, 은, 동메달을 모두 더하면 미국은 111개, 중국은 98개였다. 논란이 커지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시선이 쏠렸다. 당시 IOC 위원장이었던 자크 로게는 “IOC는 순위에 대해 공식 입장이 없다”며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

로게 위원장은 ‘회피’한 것이 아니었다. ‘올림픽은 개인이나 팀 간 경쟁이지, 국가 간 경쟁이 아니다’라는 올림픽 헌장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물론, 과거엔 IOC도 국가별 순위를 매겼다. 1908년 런던 올림픽부터 10여 년간 종합점수를 기준으로 참가국의 서열을 가렸다. 이로 인해 “나라 간 경쟁과 갈등이 커진다”는 비난이 일자 이후 종합점수 제도를 폐지했다.

IOC의 공식 기준은 없지만, 나라마다 여전히 올림픽 메달 순위를 내놓는다. 우리는 금메달 수를 기준으로 순위를 정하고, 올림픽 주관 방송사 NBC 등 미국 언론은 대체로 총 메달 수를 기준으로 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찰리 터글 교수의 종합점수제(금메달 5점, 은메달 3점, 동메달 2점)를 비롯해 인구 1명당 금메달 수, 국내총생산(GDP) 대비 메달 수 등 이색 기준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금메달을 기준으로 한 순위 방식을 유지해온 걸까. 여러 사연이 있겠지만 “나라마다 ‘유리한 방법’으로 순위를 매긴다”는 로게 위원장의 말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여름 및 겨울올림픽에서 10위권에 드는 스포츠 강국이다. 그러나 여름올림픽은 양궁과 태권도를 비롯한 몇몇 격투 종목, 겨울올림픽은 쇼트트랙 등 한두 개 종목에서만 강했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때 금메달 6개를 따서 종합 7위에 올랐는데, 쇼트트랙 안현수(3관왕)와 진선유(3관왕) 두 명이서 빙판을 휘저은 결과였다. 금메달 수에 비해 전반적인 체질은 약했다. 우리 경제 성장 모델과 비슷했다.

이번 평창은 이 점에서 과거와 확연히 달랐다. 당초 목표(금메달 8개, 종합 4위)에 이르지 못했지만 직전 소치 대회보다 두 배나 많은 6개 종목에서 메달을 땄다. 썰매, 스키 등 과거엔 꿈도 꾸지 못했던 종목에서 우리 선수들이 유럽 및 북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제야 겨울스포츠 강국이 됐다’는 게 국민 여론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메달 순위 방식을 바꾸면 어떨까 싶다. 우리는 금메달 5개로, 현행 방식으로는 종합 7위다. 그런데 총 메달 기준을 적용하면 17개(은메달 8개, 동메달 4개 포함)로 스웨덴을 제치고 6위로 올라선다. 메달 종목이 늘어나 총 메달 수로 기준을 바꿔도 흔들리지 않는 경쟁력이 생겼다.

순위 방식을 바꾸면 진짜 좋은 이유가 따로 있다.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 그동안 결승전에서 패한 은메달리스트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국민들은 칭찬 대신 비난을 쏟아야 했다. 방식 하나만 바꿔도 은메달도, 동메달도 그저 값질 뿐이다. 메달 색깔에 상처받지 않게 되고, 웃을 일이 많아진다.

올림픽은 전쟁이 아니라 축제다. 축제는 즐기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해볼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다음 올림픽이 기대된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
#2008년 베이징 올림픽#올림픽 메달 순위#순위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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