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85>가장 뜨겁고 가장 포항답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일 03시 00분


경북 포항시 포스코역사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옛 삼화제철 고로(1943년 제작).
경북 포항시 포스코역사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옛 삼화제철 고로(1943년 제작).
1991년 강원 동해시 삼화제철 터에 아파트를 짓기로 했다. 그곳엔 선철(銑鐵) 생산을 위해 1943년 설치한 고로(용광로)가 8기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북한 제외)에 남아 있는 고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아파트를 짓는다는 명목으로 고로 7기를 철거해 버렸다. 역사의 흔적보다 개발이 더 중요한 시대였다. 막상 없애고 나니 반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 남은 고로라도 잘 보존해야 하는데….” 1992년엔 문화재로 지정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포스코(옛 포항제철)가 고로를 눈여겨보았고, 1993년 고로를 매입해 보존하기로 했다.

일제는 군비 확장과 대륙 침략이 한창이던 1930년대부터 한반도에 제철소를 짓기 시작했다. 1943년 일본 고레가와 제철은 당시 삼척에 소형 고로 8개를 갖춘 공장을 세웠다. 광복 후 고레가와 제철은 삼화제철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전력, 원료, 기술자가 모두 부족해 고로를 제대로 가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949년 제철소 규모를 확장하면서 고로를 보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보수공사는 6·25전쟁으로 중단되었다. 1952년 국고보조금을 투입해 고로를 다시 보수했다. 이어 1954년 시험생산에 들어갔으나 전력과 자금 부족으로 곧바로 휴업을 해야 했다. 이후 추가 보수가 수차례 되풀이되었고 드디어 1961년부터 선철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것이 1950, 60년대 한국 제철산업의 현실이었다. 1960년대 제철소가 10여 곳 있었지만 제대로 된 선철을 생산하는 곳은 삼화제철이 유일했다. 삼화제철은 1971년까지 철을 생산하고 문을 닫았다. 동국제강이 고로를 인수한 뒤 그 가운데 7기를 개조해 생석회를 생산하기도 했다. 용광로의 용도가 폐기된 7기의 고로는 끝내 아파트 건설 과정에서 철거되고 말았다.

1993년 포스코는 하나 남은 삼화제철 고로를 해체해 포항으로 옮겨왔다. 보수 복원을 거쳐 지금은 포스코역사관 야외전시장에 전시해 놓았다. 수차례 보수와 가동 중단을 반복했지만, 그래도 한 시대를 뜨겁게 견뎌온 삼화제철 고로. 거기엔 우리 제철산업의 역사와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형 고로라고 하지만 그래도 높이 25m, 무게 30t의 위용을 자랑한다. 멀리서 보면 멋진 예술조형물 같다. 제철도시 포항의 이미지와 참 잘 어울린다.

이광표 논설위원·문화유산학 박사
#삼화제철#한국 제철산업#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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