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달리 트럼프 숲은 트럼프가 만들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기후변화 행보를 비판하는 세계 시민들이 십시일반 기부한 나무로 전 세계에 조성되고 있다. 트럼프 숲은 짙푸른 녹음이 아름다운 자생 숲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정치경제적 불협화음이 빚어낸 갈등의 산물이다. 지난달 20일 트럼프 숲에 100만 번째 나무가 심어졌다. 트럼프 정권의 반기후변화 정책이 초래할 탄소배출량을 상쇄하기 위해 애초 100억 그루를 목표로 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산림은 탄소 흡수원이며 산림 조성으로 탄소를 상쇄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합리적 기후변화 대응 수단이다. 하지만 탄소 상쇄를 위해 조성한 산림이 실제 얼마나 탄소를 흡수했는지 검증하는 데는 불확실한 점이 많다. 나무가 병이 들어 고사하거나 노화해 탄소 흡수능력이 저하되기도 하며 생육환경에 따라서도 실제 탄소흡수량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표준 탄소흡수량을 대입하면, 1ha의 30년생 소나무 숲은 매년 10.8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만 실제 그만큼의 탄소 흡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산림 관리와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나무를 심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트럼프 숲은 좋은 취지와는 다르게 한 가지 중요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숲을 조성하는 것으로 트럼프의 반기후변화 정책의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고 미국이 배출한 탄소를 상쇄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실제로 100억 그루의 나무가 트럼프 정권이 배출한 탄소를 전부 상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은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산림 탄소 상쇄 외에도 탄소를 상쇄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하거나 고효율 기기를 도입해 탄소를 상쇄하기도 하며,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탄소배출권을 구매하는 방법으로 상쇄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보다 근원적인 측면에서 탄소 상쇄의 타당성을 문제 삼기도 한다. 어마어마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거대 기업에 주는 ‘면죄부’라는 것이다. 기술 혁신이나 구조 개편을 통해 기업이 적극적으로 탄소를 감축하도록 유도하지 못하고, 기업이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난이다. 대기 중에 쌓이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감축 수단을 개발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나,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진정성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심각한 음주로 간이 나빠진 사람은 현상 유지라도 하려면 금주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다. 기후변화는 진행 중이며 미래 시나리오는 결코 밝지 않다. 지구 온도 상승을 막기 위해선 배출한 양만큼 탄소를 상쇄하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탄소 상쇄를 통해 탄소 중립을 유지하는 동안에도 전 지구적 탄소배출량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급격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통해 계속 증가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숲은 지도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든 지구 어디에나 트럼프 숲의 이름으로 나무를 심을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지리적 위치를 가지지 않는다. 오늘 트럼프 숲이 지구촌 여기저기에 100만 그루 규모로 조성된 것은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세계 시민들의 의지가 그만큼 뜨겁다는 것이다. 100억 그루의 나무가 심어지면 그때 과연 트럼프 대통령은 무슨 말을 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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