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랬다. 푸틴 대통령은 핵무기 감축협정을 짓밟는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핵추진 미사일 개발 완료를 선언하며 “미국을 꺾을 무적의 핵미사일을 개발했다”고 허세를 부렸다. 18일 대선을 겨냥한 국내용 행사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전 세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 부과 방침을 밝혔다. 동맹 관계인 한국과 유럽의 거센 반발도 무릅쓴 것은 11월 중간선거를 염두에 둔 승부수라는 게 워싱턴 정가의 분석이다.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의 진수는 4일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이었다. 그 중심에는 네 번째 집권을 노리는 82세 백전노장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있다. 그는 포퓰리즘 공약의 원조 격으로 ‘선거 공약의 왕’으로 불린다. 그는 우파의 무기인 감세 공약을 자유자재로 휘두른다. 이번 총선에서 그가 퍼뜨린 ‘감세 꽃향기’를 맡지 못한 계층이 없을 정도로 맞춤형 전략이 탁월하다. 부자에게는 상속세 폐지를, 가난한 자에게는 세금 전액 면제를 약속했다. 차를 가진 자에게는 도로세와 자동차세 폐지, 집을 가진 자에게는 주택세 폐지를 공약했다. 늘어나는 동물 애호가를 위한 반려동물 사료 세금 폐지까지 챙기는 세심함까지 보였다. 문제는 늘 돈이다. 전문가들은 그의 감세 공약에만 1300억 유로(약 173조 원)의 국가 재정이 들어간다고 분석했다. 그런 그가 1994년 처음 총리를 맡은 이후 24년간 정치를 주름잡은 결과는 천문학적인 2조3000억 유로(약 3059조 원) 규모의 국가부채와 30%가 넘는 청년실업률이었다.
그런데도 베를루스코니가 뿌린 꽃향기에 취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각 정당은 더 센 환각제를 들고나오기 시작했다. 2009년 인터넷 무료, 근로시간 주 20시간 단축을 들고 창당한 좌파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은 이번 총선에서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 월 780유로(약 103만 원)를 약속했다.
그나마 ‘정상’으로 평가받는 집권 민주당도 이 물결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청년실업자가 늘면서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 ‘캥거루족’의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으로 오르자 민주당은 부모와 함께 사는 30대에게 월 150유로(약 20만 원)를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포함해 100가지 가족 공약을 내걸었다.
매번 공약에 속은 이탈리아 유권자들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72%가 어떤 정당의 공약도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책 선거가 물 건너가니 선거판은 각종 음모와 흑색선전, 폭력이 판을 쳤다. 최대 이슈로 떠오른 난민과 관련해 연일 거리시위와 폭력 사태가 벌어졌고, 73년 전 죽은 파시스트당 당수 베니토 무솔리니가 최고 화제 인물이 되는 퇴행적 선거가 치러졌다.
정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사회 전체에 대한 불신은 커져갔다. “홍역 주사를 맞으면 아이들이 자폐증에 걸린다”는 소문은 이탈리아 의사들과 세계보건기구(WHO)까지 나서서 부인했지만 진실처럼 퍼져나가며 선거 최대 이슈로까지 떠올랐다.
4일 총선 결과 단일 정당 1위는 좌파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이, 정치세력 차원의 1위는 우파 포퓰리즘 연합이 차지했다. 포퓰리즘을 심판하지 못한 부메랑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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