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간 중매외교가 힘든 건 1차적으로 까칠한 미국 탓이다. “집안 재산은 100억 원 이상이어야 하고 외모는 김태희급이어야 한다”니 선을 보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김태희급이 나오지 않으면 면전에서 “넌 참 별로야”라고 면박을 주겠다고도 한다. 섭외가 쉽지 않은 김태희급을 맞선자리로 끌어내야 하는 우리로선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당초 우리 정부의 중매전략은 3단계였다. 외교부 내부 문건에 따르면 ‘인도적 대화→포괄적 핵 대화→비핵화 대화’의 순으로 끌고 가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한 관계자는 “억류자 석방을 위해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결과적으로 ‘최대의 압박’ 기조를 깨야 하는 모순에 부딪힐 수 있다”고 말했다. 핵 문제까지로 넘어가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린다.
‘곧 혼기를 놓친다’며 경고해온 미국에 북한이 뜻밖의 성의를 보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단에 “비핵화 문제 및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을 상대로 한 1차 중매 작업이 일단 성공한 것이다.
워싱턴 조야에선 정권 교체에 대한 두려움이 김정은의 태도를 바꿔놨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정권 교체 의도는 없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 하지만 최근엔 이런 말이 쏙 들어갔다. “정권 교체가 북핵 해법”이라고 해온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대한 신임은 더 두터워지고 있다. 트럼프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해 말려서 자멸하게 하든(제재와 압박), 때려서 소멸하게 하든(군사공격), 둘 중의 하나는 해야 결론이 난다고 보는 분위기가 강했다.
2002년 새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한 뒤 이듬해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을 제거했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라는 얘기도 끊이지 않는다.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①대량살상 무기 개발 ② 9·11테러 지원 ③인권 탄압 ④유엔 결의 위반 등을 공격 명분으로 삼았다. 최근 북한과 관련해 듣는 말들과 겹쳐진다. 결국 이런 강경 기류가 역설적으로 트럼프가 원하는 대화판을 짜는 데 힘이 됐지만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여전히 강한 의심을 갖고 있다. 그것이 다시 가면일지도 모른다는 불신이다. 트럼프는 “조지 부시 부자도 속고,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도 속았지만 나는 못 속인다”고 말해왔다.
실제 북한 노동신문은 6일 “핵무력은 미국의 범죄를 끝낼 정의의 보검”이라고 보도했다. 비핵화 대화 의지를 밝힌 건 이런 보검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뜻이어서 모순을 야기한다. 김정은으로서는 임기가 정해진 트럼프 말만 믿고 핵을 포기했다가, 후임자에게 뒤통수 맞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을 수도 있다. 트럼프 입장에선 ‘북한이 비핵화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볼지 모른다. 그러면서 실제 비핵화가 될 때까지 현재의 압박을 풀지 않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중매쟁이의 2차 역할이 필요해진다. 문 대통령은 4월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김정은과 만났을 때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받아내야 한다. 이걸 토대로 타임테이블을 만들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야 한다.
중매쟁이의 역할은 결혼을 성사시키는 일이다. 트럼프는 이 중매가 잘되면 좋고, 잘못돼도 다른 옵션에 대한 명분이 생긴다. 혹시라도 김정은의 웃는 얼굴이 역시 가면이었다면 중매쟁이의 책임도 적지 않다. 이 어려운 중매가 북-미 대화와 한반도 비핵화의 혼사로 이어지는 길은 아직 멀고 험하다.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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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7 04:57:00
미국이 뭐가 아쉬워서 북개 같은 불량 국가와 결혼을 하나?? 너 같으면 하겠나?? 김태희가 아니라 망나니가 나왔는데 누가 결혼 하겠나?? 미국도 이런 결혼식은 일단 판을 뒤집고 싶을 것이다. 미국은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자기 주도대로 하지 북개에게 끌려 가겠나??
2018-03-07 07:25:13
박특파원은 핵심을 놓쳤다. 우리는 중매쟁이일 뿐만 아니라 핵공갈의 당사자라는 점을. 이번에는 트럼프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감당하여야 한다. 핵공갈을 끝장내라. 그렇지 못하면 국민들은 쇼라고 할 것이다.
2018-03-07 08:46:01
'미국이 교량을 제공하고 '러시아'가 '물자'를 제공하고 중국이 인력을 제공하고 일본이 기술을 제공하고 한국은 순수하게 외교와 세금을 지원해서 예를 들어 두만강 유역 개발 사업이 가능하다'는 영사 업무(?)가 가능했던 것은 김대중 정부인데 지금도 된다고 하면 교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