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세대 선수와 자원봉사자, 평창 올림픽에서 보여준 저력
‘Z세대의 到來’는 올해 트렌드… 밀레니얼과 닮은 듯 다른 세대, 실용적 사고에 안정 지향적
‘미투’도 북핵도 이전 방식으로 젊은 세대를 설득 못 한다
세종대로 사거리 건널목에서 무심코 건너편을 바라보는데 가슴이 환해진다. ‘아이들의 팽팽한 마음/튀어오르는 몸/그 샘솟는 힘은/어디서 오는 것이냐’(김광규 시인의 ‘오래된 물음’). 겨울 내내 눈에 익었던 교보문고 글판이 새 단장을 했다. 어느새 봄인가. 한 주일 사이에 다른 세상이다. ‘겨울 공화국’이 떠오를 정도로 유난히 춥고 탁한 겨울이었지만 그래도 2월 한 달은 올림픽 덕분에 혹한도 먼지도 잠시 잊고 지냈다.
넘치는 흥과 활력으로 겨울 축제를 만들어낸 일등 공신인 선수들과 자원봉사자들. 젊은 그들은 당당하고 적극적이며 쾌활했다. 30년 전 88올림픽의 ‘각 잡힌’ 청춘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서 ‘우리 아이들이 달라졌어요’라는 TV 프로그램 제목이 떠오를 정도였다.
이번 올림픽에 나온 10대 선수는 23명, 소치 때는 9명에 불과했다. 석연찮게 500m 실격 판정에도 꿋꿋한 최민정(20), 0.002초 차로 1500m 결선에 못 나간 서이라(26)가 공히 ‘꿀잼’을 말하는 장면은 기분 좋은 반전이었다. 이는 어찌 보면 더욱 강화된 한국 청년의 ‘멘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결과에 상관없이 올림픽을 즐기는 모습이 신선하기만 하다. 알게 모르게 궁핍과 어둠의 그늘이 제법 저 멀리 지나간 것이다.
세계가 평창의 성공 요인으로 첫손에 꼽은 자원봉사자들은 80% 이상이 1020세대. 바람 쌩쌩 부는 날 강릉과 평창의 경기장 안팎과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이들은 환한 미소로 씩씩하게 제 몫을 했다. 이 땅의 모든 청춘을 마치 ‘헬조선’병 환자처럼 여겼던 편견을 깨뜨린 것이다.
‘Z세대 시대의 도래.’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올해의 국내 트렌드로 꼽은 것이다. 세대 구분이 무 자르듯 되는 일은 아니지만 대략 Z세대는 1995년부터 2000년대 중반 태어난 1020세대를 말한다. 1980∼1995년 태어난 밀레니얼세대(Y세대)를 잇는 의미로 붙은 이름이다. 올해 이 중 성인이 절반을 넘으면서 경제 전면에 부상할 것이란 전망이다.
얼마 전 BBC 보도에 따르면 형제지간인 밀레니얼과 Z세대는 닮은 듯 차별화된다. 날 때부터 스마트 기기와 친한 Z세대를 ‘스크린 애니멀’로 명명한 외국 학자도 있다. 소셜미디어와의 단절은 꿈에도 상상 못 한다. 스노보드의 클로이 김(18)이 결선 3차 시기 직전에 아침에 샌드위치 남긴 것을 후회하며 트윗에 ‘행그리’(hungry+angry)라고 쓴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글로벌 시대의 Z세대는 국경을 넘어 서로의 정감을 공유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상주의를 추구한 직전 세대와는 신념도 가치도 다르다. 집단보다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고, 실용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Z세대는 1차 ‘유보 53%’ 의견에서 4차 ‘재개 53%’로 바뀌었다. 이념에 휩쓸리기보다 새 정보에 따라 판단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부모세대가 2008년 경제 침체의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인지 경제적 안정을 몹시 중시한다. 해외에서는 Z세대의 일에 대한 관념이, 경제적 번영을 누린 밀레니얼보다는 오히려 대공황 시절 태어난 구세대의 사고방식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조부모와 더 통하는 구석이 많은 격세유전이라고 할까. 나이보다 철든 생각을 가졌기에 애어른 세대라고도 불릴 만하다.
Z세대의 부상은 전방위로 영향을 확산시킬 것이 자명하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은 기득권 세력과 기성세대이다. 미투 운동과 관련해 모 성당에서 “사흘 정도만 보도 거리가 없으면 잠잠해진다”는 단체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수구적 사고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모바일로 공감하는 이슈를 스스로 추적하고 여론을 만들어가는 Z세대에게는 안 통할 얘기다.
베이비부머 시대는 자연의 이치대로 저물어간다. 저마다의 집단에 음습하게 포진한 크고 작은 권력의 괴물을 청산하고 도덕적 타락을 자발적으로 성찰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역풍에 쓸려갈 것이다. 미투 운동도, 한반도 평화체제도 고루한 이념에 기댄 정책으로는 Z세대의 마음을 얻지 못할 터이다. 이들은 자신의 가치와 믿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데 이전의 그 어떤 세대보다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
이들이 바로 자유와 민주를 견인할 대한민국의 봄이다. 아무리 혹독한 겨울도 봄을 이길 수 없다. 이 차세대 주역의 도래 앞에 기성 체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들이 당당하고 올곧게 앞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터를 닦고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앞선 세대의 도리이고 책무 아닐까. 그래야 나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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