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우니라.” ‘논어’ 위정(爲政) 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의 좌우명으로 애용되는 명언이기도 합니다.
논어의 문장들이 그렇듯이 이도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어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공자에게 배움은 항상 삶의 중심에 있다는 겁니다. 이는 논어의 도입부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공자는 삶의 의미를 호학(好學), 곧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르치고 배우는 일, 곧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배움이 생각과 분리될 수 있는지 의심이 듭니다. 공자가 생각 없는 배움을 경고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배움과 생각이 분리되는 배움터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오랫동안 배운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인식해 왔던 현실의 방증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배움은 생각을 동반합니다. 아니, 제대로 된 배움은 생각과 함께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거나 전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각을 서로 나눈다는 뜻입니다. 생각으로 놀이한다는 뜻입니다. 때론 생각으로 ‘싸움 놀이’를 하기도 합니다. 진지한 논쟁을 연습하기도 하지요.
잘 가르치는 사람은 자신이 가르친 것에 대해 제자들이 의심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이는 배우면서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배우기가 곧 생각하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 진지하고도 치열한 생각의 게임에서 제자가 스승을 견디듯 스승도 제자를 견뎌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스승으로서 곤혹스러운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얻는 것이 더 큽니다. 그러한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끔 지속적으로 자신을 연마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스승과 제자의 상호 인성교육은 저절로 됩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것의 의미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역으로 생각하기는 배움의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묻게 됩니다. 질문이 많아집니다. 그러면 그에 대한 답을 찾게 되고 이어서 구체적인 정보와 지식을 구하게 됩니다. 타인의 앎을 참고하게 되고 기존의 지식을 비판, 수용하게 됩니다. 곧 배우게 됩니다.
나아가 탐구의 정신과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알려진 것을 바탕으로 미지의 것을 연구하게 되는 진지한 배움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배움은 넓고 깊어지지 않습니다. 본디 진정한 교육이란 배움이 곧 생각이며 생각하기가 곧 배우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 현장은 오랫동안 그러지 못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주입식 교육이 인습처럼 배어 있는 것이죠. 대학에서는 강단에서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듯한 강의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교육 수용자, 곧 배우는 자의 입장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고등학교에서 자기주도 학습 등의 시도를 해오고 있습니다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대학에서는 다양한 형식의 세미나 수업을 활성화해야 하는데 아직 매우 미진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더 노력해야 합니다.
새 학기가 막 시작되었습니다. 배움과 생각은 분리될 수 없음을 실천하는 교육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전의 명언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교육 현장에서 감히 도전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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